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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5주일
  ۾ : 가브리졦     ¥ : 10-05-02 08:32     ȸ : 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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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위해 예수님은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이라고 물어보면 그 대답은 십인십색일 정도로 다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가장 귀한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놓는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귀한 생명까지 내어놓는 사랑에 대해서 익숙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여유가 있다면 도움을 주려고 하겠지만, 여유가 없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득이 되는 사랑에 익숙해 있습니다. 고통과 아픔을 맛보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원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손해를 보면서 나누는 사랑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고 고귀하고 감동적인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누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 좀 멀리 떨어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오래전에 상영된 중국영화 “마지막 황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내용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황제로 등극한 소년은 큰 궁궐 안에서 수천 명의 내시를 거느리고 호화롭게 살아갑니다. 한번은 황제의 동생이 황제에게 질문을 합니다. “황제가 잘못하면 어떻게 되느냐고?”묻습니다. 소년 황제는 대답을 합니다. “내가 잘못하면 다른 사람이 벌을 받지”라고. 그러고 나서 황제는 동생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귀한 도자기를 고의로 깨뜨립니다. 그러자 귀한 도자기 곁에 있던 신하가 그 잘못에 대한 대가로 매를 맞습니다. 잘못한 황제 대신에 옆에 있던 종이 잘못을 뒤집어쓰고 매를 맞습니다. 영화의 내용처럼 대부분의 왕은 잘못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종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못한 종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종 대신에 오히려 왕이 벌을 받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취하신 사랑의 계산법입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상식과는 너무나 다른 계산법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겠다고 다른 아흔 아홉 마리 양떼를 그냥 두고 어둠 속으로 뛰어듭니다. 고귀한 행동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들판에 남아있는 아흔 아홉 마리 양들은 도둑과 늑대에게 그대로 노출되어 위태롭게 됩니다. 우리가 보기에 틀린 방법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다가, 다른 양들은 늑대로부터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복음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농장의 주인이 포도원에 일할 일꾼들을 찾습니다. 일꾼 중에는 해 뜰 무렵부터 일찍 와서 일한 사람도 있으며, 오전 휴식시간에 온 사람도 있으며, 점심나절에 온 사람도 있으며, 오후 쉬는 시간에 온 사람도 있으며,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온 사람도 있습니다. 농장의 주인은 일이 끝나자 일한 일꾼들에게 일당을 줍니다. 뙤약볕에서 열두 시간 꼬박 일한 사람이나, 다섯 시간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밖에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일당이 지급됩니다. 농장 주인의 처사는 공정한 보수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다섯 시간 일한 사람이나, 열두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은 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시장의 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경제 원리로 보면 이치에 맞는 계산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의 원리에는 일등이나 꼴찌에 상관없이 똑같이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서 일한 공로로 구원이 결정된다면, 구태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보다는 말을 잘 듣는 모범생에게 사랑과 칭찬을 베풀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행동을 일삼는 죄인을 나무라지 않고 사랑과 용서로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 가시 때에 옆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용서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강도가 완전히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그 강도는 두려움 때문에 기억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강도를 조건 없이 용서하십니다. 용서를 받은 그 강도가 앞으로 교회에 나갈 것도 아니며, 자기가 피해를 입힌 사람들을 찾아가 사죄할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죄인들을 기꺼이 사랑으로 맞아들입니다. 그 분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를,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 자리에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거울 자아 이론이 있는데 이 이론에 따르면 인생에 있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 주는가에 따라서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초대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바라봅니까? 바로 사랑으로 바라보십니다.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들까지도 이미 다 용서하셨습니다. 이 순간 예수님께서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목숨을 바치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아름답고 고귀한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길 때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직 실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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