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 대축일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의 대축일이다. 신부님을 생각하면 지내는 축일이지만, 생각할수록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만 해도 고작 멀리 가봐야 몇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던 시절이었다. 어쩌면 우물 속의 개구리들처럼 바깥세상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에 중국을 넘어 서양문물을 배우고 익힌 젊은 김대건 신부님이 꽃도 피기 전에 26세 나이로 처형을 당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한시 몇 수를 읊으면 유식한 양반으로 대접받던 시절에 김신부는 라틴어, 희랍어, 불어, 영어, 중국어를 배웠던 청년이며,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삶을 배우고 익힐 정도로 세상 진리에 흠뻑 젖어 있던 청년이었다. 16살 어린나이에 충청도에서 평양을 거쳐, 중국대륙을 훑어 내려가, 남단의 섬 마카오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세상 태초의 원인을 깨닫고,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영원한 진리에 청춘을 불태우던 젊은이였다. 그런데 공부를 다 마치고 입국한 지 일 년도 안 되었는데, 1846년 10휠16일 한강변 새남터에서 처참히 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며 슬픈 일인가?
김대건 신부님이 일찍 순교를 당하셨지만, 우리민족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순교를 통해 믿음을 심어주셨다. 신부님은 군무효수라는 극형을 받으면서도"나는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이제 시작됩니다."라고 외쳤으며, 평소에 사도 바오로가 고백한"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 1,21)라는 말씀을 가슴깊이 새겼다. 신부님은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것이다. 신부님이 남긴 교훈은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지만, 하느님 나라는 영원하기에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라는 것이다. 신부님이 쓰신 옥중의 편지에 보면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태어난 보람이 무엇인가? 그를 알아보았으되 배신하면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더 낮다고"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임자'란 '주님'과 같은 뜻이며, 하느님은 인간과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 절대권을 가지고 있어 만물의 주인이며, 아버지라는 신부님의 신앙 고백을 읽을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의 '임자요, 주인'임을 알았다면, 그분을 배반할 수 없다"는 것이 신부님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어쩌면 우리는 김대건 신부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았으면서도 심오한 신앙의 진리를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놓을 각오로 신앙생활을 하였던 선조들에 비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차라리 취미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엔 똑똑하고 많은 것을 배운 사람들이 있지만, 믿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위해 칼 앞에 목을 내민 순교자들의 대열을 '바보들의 행진'으로 보고 비웃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있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주님을 내세울 줄을 알 때, 이러한 순교정신을 이어 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