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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본당소개 > 남승택가브리엘 신부님 강론 >
  연중 15주
  ۾ : 가브리졦     ¥ : 10-07-11 10:11     ȸ :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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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갑니다. 그러한 생명체들 가운데 사랑의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는 유일하게 인간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존재합니다. 오늘 복음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율법 학자는 예수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질문을 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이 누구인지 어떠한 사람인지를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여행하던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 여행자는 가진 것을 모두 다 빼앗기고, 복음 말씀대로 반쯤 죽은 상태였습니다. 형편없게 된 이 여행자의 모습은 다 죽어가는 거지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사제 한 사람이 지나갔지만, 피투성이의 여행자를 못 본 체 하고 지나쳐 버립니다. 공연히 아는 척했다가, 무슨 변을 당할지도 모르고 또 뒤처리가 귀찮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레위 사람이 지나갑니다. 레위 사람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레위도 역시 못 본 체 하고 지나쳐 버립니다. 알 만한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을 보거나, 다친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슬퍼집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똑똑하다는 사람, 유능하다는 사람,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사람들이 이런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야외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누가 날치기 당하거나, 폭행을 당했을 때, 이런 불의를 보고 선뜻 도움을 주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서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집니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관여했다가 봉변이나 당하면 창피보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못 본 체하고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일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진정한 이웃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우리 주변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롭고 힘든 자들, 소외당하고, 고통 받는 자들이 우리의 이웃임을 말해 줍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본래는 강도를 만난 유대인하고는 원수 사이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과는 수백 년 동안 원수처럼 지내 왔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관계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기 민족을 무시하고 경멸했던 유대인을 못 본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돈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손수 간호를 하며 봉사를 했던 것입니다. 피가 다르고 믿음도 다르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보살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오직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다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이, 하느님의 사랑이요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하느님을 수시로 배반한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러한 사실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시고, 당신 목숨을 내어주면서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용서하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죄에 빠진 우리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시고,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십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 자신들도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이웃이 아무리 밉고 속상하드래도 우리가 받은 은총이 너무 크기 때문에, 밉고 얄미운 이웃에게 그 사랑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어 줄 때, 하느님은 더 우리 안에 머물게 됩니다. 사람은 그냥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제는 부정을 탈수는 없지! 라는 이유로, 레위사람은 성전에서 봉사할 사람이 저 피 흘리는 자를 만질 수는 없지?” 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슬픈 일입니다. 바쁘게 지내다는 이유로, 급한 약속이 있다는 이유로,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걱정거리가 많아 심적인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슬픈 일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이웃에게 강하게 전해질 때 우리는 하느님 모상을 닮아 갈 수 있게 됩니다. 머리를 잘 굴려서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다 하더라도, 따뜻한 가슴을 지니지 못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저 욕구에 따라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돈과 재물, 권세와 명예를 많이 얻는다고 우리를 하느님의 모상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가는 것은 이웃에게 나누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차지하고, 많은 것을 누리는 것이 자신을 성취시키고 성공하는 길이라고 쉽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돈과 재물로, 높은 권세와 명예로, 깊은 전문 지식으로, 자신을 치장하려고 애를 씁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자신의 욕구만을 위해 빠져 있다면 사랑의 마음은 흐트러지고, 인간적 욕구인 쓰레기 더미에 파묻혀 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닮은 모상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일입니다. 지위와 명예를 내세우고, 돈과 재물로 자신을 치장하고, 전문 지식으로 자신을 위해 무장하드래도 그러한 삶 자체는 참다운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 내가 누구이며, 어떤 신분이며,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하느님을 닮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되었을 때, 죽어 가는 이웃도 살릴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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