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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나눔] 교회는 기쁨의 장
  ۾ : 광야의롦     ¥ : 09-05-29 09:29     ȸ : 3548     Ʈ ּ
교회, 기쁨으로 함께하는 존재

루카는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기쁨을 본질적인 기본 바탕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신명나는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들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온 백성에게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그 모임에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늘려 주셨다."(사도 2, 44 - 47)

초대교회의 사람들은 음식을 한께 나누면서,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 예수께서 가까이 계시는 것을 체험했다.
예수님은 공생활 중에 제자들, 그리고 그의 복음을 들으려고 온 사람들과 수없이 많이 즐거운 식사를 함께하면서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하느님의 자비하심,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 등에 대해
단순히 듣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체험하도록 했다. 루가에게 기쁨은 성령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도 13, 52)

성령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기쁨을 가지는 것은 서로 일치하는 일이다. 기쁨은 성령체험에 대한 표현이다.
성령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하여 유다인과 그리스인, 주인과 하인, 남자와 여자,
가난한 사람과 부자들이 서로 기쁨으로 함께하도록 한다.

우리가 오늘날의 교회가 가진 분위기를 초대교회의 것과 비교한다면,
이 두 교회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초대교회와는 달리 오늘날의 유럽 교회에는 억압된 분위기가 깔려 있다.
오늘날의 유럽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점점 더 등을 돌리는 느낌이 든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불평하고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람들이 서로 억압되고 무거운 부정적인 견해들을 나눔으로써 더욱더 서로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본당 신부들의 모임이나 사목 보조자들, 그리고 본당의 사무원들의 모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다. 초대교회가 가졌던 기쁨을 여기서 느끼기기는 매우 힘들다.
동방정교회의 신학자인 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은 교회가 사람들을 자꾸만 잃어 가는 현상은
교회 안에서 기쁨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

"교회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쁨으로 세상 전체를 이기면서 그 안으로 퍼져 나갔다.
이제 교회는 기쁨의 증거자가 되는 역할을 그만둠으로써 세상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교회에 대한 감격과 정열을 빼앗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현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창조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것과 같은 정열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상대편 안에 들어 있는 생명력을 뽑아 내어 쇠진시키고 있다.
이런 침체적인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를 헐뜯어 소외시킨다.

침체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참된 실제를 만날 수가 없다.
물론 교회 안에 기쁨이 샘솟도록 하자고 외쳐대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가 오늘날 처해있는 상황은 장밋빛으로 가득차 있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와 사회 안에 들어 있는 부정적인 경향들에 대하여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리고 상호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쇠진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무겁고 침체적인 분위기로 끌어내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은 우리 시대가 우리에게 해오는 도전에 대항해 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쇠진시키기
때문이다. 루가에게 기쁨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든 현상은 우리가 오늘날 성령께 더 이상 믿음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어려운 상태에 쉽게 빠져들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워 성령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중압감과 침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의 힘으로 다 해결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일까?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결코 마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샘솟아 오를 성령의 샘을
간과하는 셈이다. 이 샘은 근원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기에 결코 마르지 않는다.
아니면 우리를 일하게 하고 세상의 적대적인 행위에 대해 대항해 나가게 하려는 성령의 작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불평의 세계 속으로 도망치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침체적인 경향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일어나서 실질적인 일을 하기보다는 편안한 소파에 위에
앉아서 일이 진행되어 가는 꼴을 바라보면서 평가나 하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나는 교회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이런 침체적인 분위기가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뮌스터슈바르짜흐(Mu"nsterschwarzach)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지난 70년대에
한꺼번에 수많은 수도자들이 수도생활을 포기하고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었다.
회의에서 우리는 수도회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불평만 늘어놓았다.
우리는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기보다는 서로 아래로 끌어 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 사이에는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집단적 성향이 형성되었다.
이런 것에 의해서는 우리의 공동체가 결코 나아질 수 없었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데 필요한 에너지마저 스스로 약화시켰다.
우리가 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눈을 피하지 않은 상태로 우리의 개인적인 영성에 관심을 기울였을 때,
차츰 분위기는 호전되어 갔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 안에 새로움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함께 가슴아프게 겪은 손실에도 실은 우리에게 기회가 되는 어떤 일들이 들어 있다는 것과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새로운 좋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우리 수도 공동체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협력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안에는 생동감이 흘러 넘쳤다.
우리 중의 한 형제가 시편의 다음 말을 인용해서 말했다.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한지고, 형제들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시편 132, 1)

이런 긍정적인 체험을 나누는 것이 우리 사이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가져왔다.
물론 이런 침체된 분위기말고도 또 다른 집단적 병리현상이 있었다.
사람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만 한다는 견해는 또 다른 강박감을 갖게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경우 사람은 영성적 부담을 안게 된다.
영성 그룹들은 회원들이 어떤 때 하느님을 만났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말했으며,
어떤 기적이 이루었는가에 대해 매일 이야기하게 하는 훈련을 하기도 한다.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나는 상당히 염려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나날이 언제나 멋지고 훌륭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경이로움도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고,
일상생활 중에서 하느님을 전혀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하느님을 체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그룹에서는 하나의 전형적인 형태가 늘 반복되는 것 같다는 게
내 느낌이다.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하느님이 전혀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의 삶은 엉망진창이고 완전히 비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이 하늘로부터 다가와서 그를 사로잡으셨고,
그는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제 그는 하느님의 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은 그 그룹 안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아니면 자신은 일상의 생활에서 성령을 전혀 느끼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고  화를 낸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성령에 의해 인도받고 있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고 스스로 도취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은 그들은 그런 것을 통해 하느님과 거리가 먼 자신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웃음 뒤에는 슬픔을 감추고 있다.
여기서 문제의 관건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똑바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만 보아야 한다면, 그것 또한 나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것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내 안에서 많은 분열과 갈등을 가진다.
그리고 모든 갈등과 분열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 나를 병들게 한다.

하지만 우리를 실망시키는 이런 현실의 바탕 위에서도 우리는 삶 안에 들어 있는 기쁨의 자취를 인식해내야
한다. 내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 나이에도 그런 기쁨의 자취를 발견해 낸다면,
개인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나에게 피정지도를 받는 그룹들,
상담을 청하는 내담자들, 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를 완전히 새로운 체험으로 인도해 갈 수 있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긍정하는 분위기, 이해받는 분위기, 감사하는 분위기가 내 주변에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기쁨은 다른 사람들도 그런 종류의 기쁨을 체험한다는 사실과 만나면서 더욱 커진다.
그러나 언제나 참된 마음으로 진지하고 섬세하게 나아가야 한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조작된 자세로 다가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다시찾은 기쁨」에서
안셀름 그륀 지음 / 전헌호 옮김 / 성바오로 펴냄


요안나   09-05-29 23:51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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