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들이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비유로 표현할 때가 있습니다. 그 관계의 끈에서 인간이 죄를 지으면 끈이 끊어지고, 그 끊어진 끈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회개로 다시 연결된 끈의 길이는 이전의 끈과 같은 것이 아니라, 끈이 묶여진 부분만큼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우리가 죄를 범했지만, 회개를 하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인은 죄를 짓는 것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회개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날 온난화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기상이변이 자주발생하고, 요즘은 온통 지진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아이티의 지진, 칠레의 지진, 타이완의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 자주 발생하여 우리를 자주 놀라게 만들고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기에, 죄 없는 사람들이 지진 때문에 무참히 죽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고 계시는가? 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재난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시지? 하느님은 왜 가만히 계시지? 라는 묻거나, 의구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면, 그 사람은 왜 벌을 받고 있을까? 라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기에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죄가 없는 의인에게는 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재난은 엄청난 죄를 전제로 해서 발생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어떤 사람이 와서 갈릴래아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었기에 벌을 받았는지를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사실 물어본 의미는“ 우리는 재난을 당하지 않았기에 의인이며, 우리의 의로움을 알아 달라."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재난을 당했던 그들은 죄인이고, 재난이 없는 자신들은 의인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의롭고, 선하고, 가난한 자이며, 너희는 불의하고 악하고, 부유한 자들이라고 쉽게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무서운 의도를 알아채셨습니다. 그래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죄가 커서 그런 변을 당한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예수님은 모두가 죄인이니, 모두가 회개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커다란 독에 물을 부어서 채우고자 하는데 밑이 빠졌으니, 물을 아무리 채워도 물이 빠지고 독은 그냥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 가운데, 신자들은 하도 좋은 말만 들었기에 귀만 천당에 가있고, 신부들은 늘 좋은 말만 하기에 입만 천당에 가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살아 있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좋은 이야기는 많이 듣는데, 듣는 것 따로, 사는 것 따로 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밑 빠진 독에 마치 물 붓는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삼 년째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뽑아버려야겠다는 포도원 주인에게, 포도원 지기는 “금년 한 해만 더 두고 봅시다." 라고 청합니다. 한 해만 더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지혜서에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한없는 유예를 주시는지 잘 알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주님은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 큰 힘을 발휘하실 수 있다. 주님은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만인에게 자비로우시며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죄를 살피시지 않는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기에, 단지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지혜 11,21-26). 이처럼 주님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기에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발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유예를 허락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의인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줄 아느냐? 너희가 행실이 바르고,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기 때문에 이렇게 잘 살고 있는 줄 아느냐? 너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항상 좋은 이야기만 들어서 너희가 이미 좋은 사람이 된 줄 아느냐? 물음을 통해 착각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눈이 올 때 하늘을 본 적이 있습니까? 눈이 올 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자기의 몸이 하늘로 붕 하고 올라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단 한 걸음도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려오는 눈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늘 미사에 참례해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무조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따라 살지 못하면, 삶의 작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은혜를 청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