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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2주일
  ۾ : 가브리졦     ¥ : 10-02-28 21:02     ȸ : 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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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밴쿠버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대단합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뜻하지 메달 소식을 전해줍니다. 특히 피겨스케이트에서 프리 연기를 마치고 울음을 터뜨리는 김연아의 모습은 감동 자체였습니다. 아마도 그 울음은 스스로 해냈다! 는 대견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모릅니다. 그녀의 모습은 빙상에서 우뚝 선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김연아 선수 역시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뚝 서기 까지는 많은 고통을 이겨내고 훈련을 통해 넘어야 할 산을 등정했기에 그 자리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타볼 산에서 일으키신 영광스럽게 변모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천국의 영광과 그 아름다움, 행복에 대한 희망을 보여줍니다. 이 변모는 너무도 휘황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었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의 옷이 눈부시게 빛났으며,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고” 감탄사만 늘어놓았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변모를 통해 미리 부활에 이르기 위해 필연적으로 올라가야 할 갈바리아 산을 연상시켜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영광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우리도 삶속에서 늘 십자가를 직면하게 됩니다. 사형수와 광부가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사형수는 자신이 묻힐 구덩이를 파고 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숨만 내쉬며 곡괭이질을 합니다. 한마디로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광부는 땀을 흘리며 땅을 파지만, 금맥을 따라 금광석을 찾기 위해 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가슴이 설레며 금덩이 때문에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결국 그 두 사람은 같은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지만, 한 삶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으며, 또 한 사람은 영광과 희망을 갖고 땅을 파고 있었던 것입니다. 2명의 장사꾼 아들을 둔 한 노파가 있었습니다. 그 노파는 비가 올 때는 짚신을 파는 아들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날씨가 좋을 때는 나막신을 파는 작은 아들을 걱정합니다. 이런 경우 노파는 매사에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서 생각한다면 날씨가 좋으면 짚신이 잘 팔려서 기분이 좋고, 날씨가 궂어 비가 오면 나막신이 잘 팔려서 기분이 좋다면, 날이 궂든 좋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긍정적인 차원은 우리의 일상생활 뿐 아니라 신앙생활에 대단한 영향을 줍니다.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면,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무한한 은총 안에서 지내게 됩니다. 오늘 발생한 타볼 산의 사건은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로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해 줍니다. 천국의 영광과 행복을 보고 오늘의 시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주인이 포도나무에서 가지를 자르다면, 그것은 고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것은 스스로 잘못하여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면, 더욱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영광과 부활의 희망을 일깨우기 위함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장차 우리에게 올 영광에 비우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리 죽음을 내다보고, 제자들의 좌절과 절망을 내다보십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천상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십니다. 당신이 수난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일어서라고 미리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순간이었지만 영원을 목격하고 체험합니다. 이 사건으로 예수님 대한 확신을 더 깊이 간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고통과 역경 속에 놓이게 되면, 좋았던 것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더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 기적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난의 순간이 오자 예수의 죽음을 이해 못하고 절망에 빠지고 도망칩니다. 변모 사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시 찾아주었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사도를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그리고 그 후에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신자가 되기 전에도 그분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신자는 이러한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잊어버리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잊지 않기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어야 신앙에 힘이 생깁니다. 누구에게나 주님께서 개입하신 사건은 있기 마련이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십시오. 우리들에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많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연처럼 느껴져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인에게는 반드시 은혜로운 사건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통으로 다가왔지만, 행복과 유익함으로 마감된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들이 신앙 안에서 주님이 베푸시는 은총이며, 신앙인 각자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변모 사건입니다. 은총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그냥 내려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평소에 바친 작은 기도가, 작은 선행이 결정적 순간에 큰 은총으로 되돌아옵니다. 요즘 우리는 믿음이 자주 세속화되어 갑니다. 믿음을 통해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재물과 건강과 현세적인 축복입니다. 병 낫고 사업 잘되며 가정 평안한 것만을 원합니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목적을 바로 거기에 둔다면 십자가의 의미는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믿음의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이 있고 또한 올라가게 될 영광의 자리가 있습니다. 세상은 보상해 줄 수 없는 축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이 힘들다 해도 하느님을 신뢰하며 예수님처럼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당당하게 짊어지고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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