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고향을 향한 마음입니다. 뉴스를 보니 고속도로에서는 귀향하는 자가용과 버스로 혼잡을 이루고 눈마저 내려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볼 때, 이번 설날도 ‘민족의 대이동’의 증후군을 여전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이고,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본래의 모습에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떠나 있는지를 뒤돌아보고, 순수한 본래의 자신을 되찾아가는 여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설날을 맞아 전통적인 세시풍속과 함께,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기억하는 합동위령미사를 통해 조상들에게 감사드리고, 그 영혼을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간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재림하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때에, 당신이 겪으실 미래의 일, 즉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과 나아가 재림까지를 내다보시며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 가겠다(요한 14,2-3).”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때’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력으로 새해를 여는 첫날인 설날에, 어머니이신 교회가 우리 모두에게 ‘깨어 기다리는 복된 종’이 되어라 는 축복의 말씀을 건네주십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깨어서 가장 반갑게 맞이하는 동물을 바로 견공이라고 합니다. 사제관에 옆에 5개월이 된 진돌이와 진솔이 라는 진돗개 두 마리가 있습니다. 제가 밤늦은 시간에 얼굴만 비춰주면,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어 대면 짖어댑니다. 연수관계로 며칠 간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올 때면 반가움의 표시로 꼬리가 끊어질 정도로 흔들어댑니다. 그러한 모습은 반가움과 함께, 주인 없이 지낸 날들에 대한 서러움을 마치 토해내는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잠깐 동안이라도 개의 목과 등을 쓰다듬어주며 놀아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종을 견공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비유가 적절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평범한 집주인도 기다렸다가 반가움의 표시로 꼬리를 흔드는 개에게 시간을 내어 시중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깨어있으면서 잘 준비한 이들을 보면 대단히 기뻐하시면 아껴줄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의 온갖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언제든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체험하는 크고 작은 모든 사건과 만나는 사람들 안에 숨어계신 주님을 찾아내고, 만나는 삶 안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마태 25,31-46 참조). 주님은 성령을 통해 지금도 세상 안에서, 모든 사람 안에서 현존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우리를 하늘나라에로 데려 가기위해 영광스럽게 재림하심(마태 24, 30-31)을 믿고 있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음’은 일회적이고 한시적으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있음은 하루하루의 삶에서 시작하여 재림의 그날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의 뿌리인 조상들의 고마움을 추모하는 날인 동시에 살아있는 웃어른들에게 효도와 존경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정성을 다하여 조상들에게는 차례와 성묘를 바치고, 어른들에게는 세배드림으로써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