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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0일 성 라우렌시
  ۾ : 테아     ¥ : 09-08-10 13:47     ȸ : 2822     Ʈ ּ

성인명 라우렌시오(Lawrence)
축일 8월 1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부제,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58년
같은이름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로마(Roma)의 일곱 부제(차부제 포함) 중 한 명인 성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에스파냐의 우에스카(Huesca) 출신이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교황 성 식스투스 2세(Sixtus II, 8월 7일)의 부제였고, 식스투스 교황이 사형을 받게 되자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교황은 그 역시 3일 안으로 자신을 따라 오리라고 예언하자, 라우렌티우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교회의 소유물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로마의 집정관이 그의 이런 행위를 알고는 교회의 보물들을 모두 황제에게 바치라고 엄명을 내렸다. 이때 그는 모든 보물을 모으려면 3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말을 하고 돌아와서는 모든 보물들을 맹인과 절름발이, 고아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에 분개한 집정관은 그를 체포하여 온갖 고문으로 괴롭히다가 석쇠 위에 눕히고는 구워 죽였다. 시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에 의하면 그의 죽음과 표양이 로마의 회개를 가져왔고, 로마에서 이교의 종말을 고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것이다. 그의 문장은 석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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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과 요리사의 수호성인, 성 라우렌시오
 
 
성 라우렌시오(Laurentius, ?-258년)는 로마의 일곱 부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발레리아누스 황제 박해 때 교황 식스토 2세가 참수당한 지 나흘 만에 동료 부제 4명과 함께 순교하였다. 이밖에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다만 그에 대해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라우렌시오는 가난한 가정 출신으로 그의 선량한 모습이 교황에게 인정을 받아 학업을 마친 뒤에 로마의 일곱 부제 가운데 수석 부제로 임명되었다. 그는 교회의 재산 관리,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호품 분배를 비롯하여 교회 내의 잡무를 보살피는 일을 맡았다.
 
교황 식스토 2세가 잡혀갈 때 라우렌시오가 나흘 뒤에 순교할 것이라고 예언하자, 그는 로마의 가난한 이들, 과부, 고아들에게 교회의 재산을 모두 나누어주었다. 로마의 총독이 교회의 보화를 내놓으라고 명령하자 라우렌시오는 가난한 이와 소경, 절름발이, 불구자, 나병환자, 고아와 과부를 모아서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하고 말했다.
 
총독은 이에 격분하여 불타고 있는 장작더미 위에 석쇠를 얹고 라우렌시오를 그 위에 구워 죽이는 참혹한 형벌에 처했다. 라우렌시오는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뒤, “자! 한쪽은 다 익었으니 좀 뒤집어주시오.” 하였고 잠시 뒤에는 “이제 다 익었으니 잡수시오.” 하고 농담을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벽 밖의 성 라우렌시오 대성당’은 로마의 7개 주요 성당들 가운데 하나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다.
 
성 라우렌시오는 로마의 수호성인이면서 가난한 사람과 요리사의 수호성인으로 8월 10일이 축일이다.
 
[경향잡지, 2005년 8월호]

 

 

 
[명화 속 불멸의 성인들] ⑥ 성 라우렌시오
 
불에 타 순교하는 순간 극적으로 표현
 
고종희·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 작품 해설 : 티치아노,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 1545-67, 440×320cm, 에스코리알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
 

빛과 색채의 대가 티치아노
성 라우렌시오 화형 장면서
고통보다 순교의 행복 묘사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림을 직접 보게 되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여행 중에 티치아노의 그 유명한 ‘성 라우렌시오’를 본 순간을 잊을 수 없으며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아! 티치아노의 작품이 이런 대접을 받았구나’ 라는 것이었다.
 
몇 해 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에스코리알 궁전을 방문했다. 수백 개의 방이 있는 이 궁전을 관람하려면 하루를 잡아야 한다.
 
스페인 역사상 황금기는 16세기 중 후반이다. 이 시기에 스페인은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들을 지배했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신대륙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이 당시 스페인 국왕의 거처가 에스코리알이었다.
 
황제 카를 5세는 티치아노를 최고의 화가로 여겼기 때문에 그를 자신의 전속 초상화가로 삼았다. 그의 아들 필리페 2세도 어려서부터 부친 밑에서 이 대가의 솜씨를 봐온 터라 에스코리알 궁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성 라우렌시오 수도원 중앙 제단화로 티치아노의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를 선택했다. 필리페 2세는 1554년 이 그림을 주문했고, 1567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으니 그림이 원래 장소에 보존된 귀한 사례가 됐다.
 
285년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성 라우렌시오는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당했던 시절에 살았으며 교황 식스투스 2세 치세 때 교황 곁에서 부제직을 지냈다. 식스투스 2세는 로마의 카타콤바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발각돼 사형을 당했는데, 사형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라우렌시오에게 “3일 후 너도 나를 따르게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과연 로마제국의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라우렌시오에게 교회의 보물을 모두 내놓으라고 협박하자 성인은 3일의 말미를 달라고 한 후 교회의 보물들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3일 후 성인은 황제 앞에 가난한 자들을 데리고 나타나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성인은 불에 타 죽는 형을 당했다고 전해지는데 성 라우렌시오가 순교의 순간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라”고 했다는 말이 전설로 전해진다. 라우렌시오의 순교 그림들은 이 일화에서 비롯되었으며, 5세기부터 석쇠는 성인을 상징하는 표징이 되었다.
 
티치아노의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달궈진 쇠 철판 위에서 죽어가는 성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라우렌시오는 상체를 약간 일으키며 한 손을 뻗어 위쪽에 있는 두 천사를 향하고 있는데 표정으로 보아 타죽어가는 고통을 호소하기 보다는 순교의 행복을 전달하려는 듯이 보인다. 성인의 주변에는 삼지창으로 성인을 불로 밀어 넣고 있는 사형집행인, 불이 좀 더 잘 타오르도록 엎드려서 불쏘시개로 불을 헤치고 있는 병사, 순교를 지휘하는 말 탄 기사 등 다수의 등장 인물들이 있지만, 그림의 배경이 밤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모습은 어둠에 묻혀서 잘 보이지 않는다. 화면 좌측에 타오르고 있는 횃불과 아치 건너편 밤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은 어두운 밤을 밝히는 유일한 조명 역할을 하고 있다.
 
밤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티치아노의 이 작품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가는 불에 타 숨지는 순간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낮보다는 밤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렘브란트의 ‘야경’은 이 작품보다 1세기 후에야 제작되었으니 왜 티치아노를 빛과 색채의 대가라 부르는지 이 그림은 말해주는 것 같다.
 
[가톨릭신문, 2009년 5월 24일]


요안나   09-08-11 00:36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다른 쪽도 마저 구워라”
얼마나 믿음이 크면 그럴 수 있을까요?
한쪽 뺨을 맞고 다른 쪽 뺨을 내미는 일도 이렇게 힘이들고 어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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