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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
  ۾ : 안드레졦     ¥ : 10-03-19 00:33     ȸ : 2689     Ʈ ּ

하느님 만나기...

기도생활의 발전 단계를

옛부터 구송기도(Oratio) - 묵상(Meditatio) - 관상(觀想)(Contemplatio)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 해왔다. 또 이러한 기도생활과 관상의 최고 목표는 다름 아닌 <지복직관 至福直觀>, 즉 하느님을 맞대면하고 뵈옵는 것이라 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만나고 대면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하는 기도생활 가운데서도 하느님 그분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고 체험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나의 기도가 구송기도(Oratio)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인가?

즉 입으로만 묵주기도를 바치고 기도문을 외우지만 실제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그리워하지도 않는 것은 아닌가? 그게 아니면 묵상을 한다고는 하는데 머리로만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

소위 명상이라는 훈련들이 이 수준에 머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훈련되지 않으면 묵상이 망상이 되고 온갖 잡생각에 시달리는 시간으로 끝나고 만다. 하느님은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관상의 단계에서는 이제 마음으로 그분을 느낀다. 그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그분의 뜻이 무엇이고 의향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정확하게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뭔가를 느끼게 된다. 이제 뭔가 잡힐 듯 하지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실천(Actio)이 관상(Contemplatio) 다음 단계에 놓여져야 한다.

실제로 희미하게 깨닫게 된 것이 명료하게 되기 위해서는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체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조금씩 그 베일이 벗겨지면서 신비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게 된다. 그때 하느님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큰소리로 이렇게 가르치신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까지 믿는 것이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보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보기 위해서는 이렇게 매개자가 필요하다. 그 매개자, 중개자가 곧 예수 자신이요. 예수 자신은 우리가 만나는 일상 가운데 현현하신다.

오늘은 노량진 수산시장에 나간다. 그곳 준 본당 신자들이 미사를 부탁했다.

오랜만에 시장사람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그 풋풋한 바다 내음, 짠 내음도 맡아보게 되리라.

그곳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 예수를 통해 그분을 보내신 하느님을 보고

그분이 진정 사랑이심을 믿게 되리라.

그분이 진정 자비이심을 믿게 되리라.

그분이 진정 기쁨이심을 믿게 되리라.

그리고 다시 감사와 찬미의 기도(Oratio)를 드리리라.

그리고 그분이 이루신 일에 대해 묵상(Meditatio) 하리라.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마음속 깊이 다시 느껴 관상(Contemplatio) 하리라.

그리고는 만나리라(Actio).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더라!> 하신 자연을...

아, 주님!

오상선 바오로 신부 - 2001년 5월


바오로   10-03-19 08:33
"구송기도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가? 묵상, 관상을 넘어 실천에 까지 이르면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다."
테아   10-03-19 12:5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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