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주님을 뵙고 제자들에게 갈릴레아로 가라는 주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갈릴레아로 갔다. 아니,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는 더 이상 할 일도 없을 뿐더러 위험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갈릴레아로 갔지만 할일이 없었다. 별 재미도 없었다. 삶의 의욕도 없었다. 가족 친지들도 방황에서 돌아온 그들을 환대 했을리 만무했을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기 잡는 일> 밖에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기나 잡으러 가야겠다고 한다.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그래 고기나 잡자."하며 따라나선다. 그런데 밤새 그물을 쳤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는다. 이게 웬일일까? 그들은 명색이 고기잡이 전문가인 어부들이 아니었던가? 그야 이상할 게 없다. 먹고살기 위해 또 정말 고기가 필요해서 그물을 던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냥 던질 뿐이지 고기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밤새 허탕을 치고 맥이 빠져 허탈해 하며 바닷가로 나오게 되었는데 어떤 이가 저쪽에다 그물을 쳐보란다. 누굴 약 올리나? 우리가 소위 전문가들인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뱃머리를 돌려 그물을 던지고 싶지 않은 게 보통이다. 그러나 그들은 순응하며 겸손하게 그물을 던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이는 기적이었다. 여태껏 이들이 그물을 쳐보았지만 그렇게 물고기가 많이 그물에 걸린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필시 주님이 아니라면 하실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사도직이나 사업에 성과가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뭐가 문제일까?
우리의 능력이 문제일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문제일까?
돈이 문제일까?
가장 큰 문제는 <주님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고기잡이 전문가들이었지만 주님과 함께 하지 않음으로써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한 반면 주님과 함께 하면서 자신들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겸손하게 그분의 말씀에 순응함으로써 엄청난 결실을 얻게 되었듯이 우리의 사도직에 있어서도 항상 문제는 그분과 함께 하느냐, 겸손되이 그분의 말씀과 뜻에 순응하느냐의 여부이다.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 주님과 함께 함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체험이다. 그분과 함께 할 때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풍요로운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 이것이 새로운 부활 체험이다.
그분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그 어떤 노력도 허사가 된다는 것, 이것이 새로운 죽음 체험이다.
부활은 이렇게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고 앞으로도 함께 하실 그 님과 함께 더불어 살아감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자가 참으로 알렐루야를 노래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노래하자!
알렐루야,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아멘. 알렐루야!
오상선 바오로 신부 - 2001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