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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다.
  ۾ : 안드레졦     ¥ : 10-06-22 00:46     ȸ : 2785     Ʈ ּ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마태오 7,6.12-14)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거룩한 것이나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던져 주는 행위는 이중의 불행을 초래합니다. 먼저, 거룩한 것이나 진주는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짓밟혀 더러워지고 망가져 못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개나 돼지는 자기들에게 주어진 것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들을 공격하는 줄 알고 물어뜯으려고 덤벼들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더 큰 불행을 가져오게 된 것이지요.

이 말씀의 원래 의미는 제자들의 선교활동의 지침이었습니다. 진주는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인 복음입니다. 하느님의 복음 말씀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 곳에서만 선포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는 자칫하면 거룩한 복음이 모독을 받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마저도 위험을 당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주보다 더 귀하고 거룩한 우리의 몸, 우리 일생을 돼지보다 더럽고 개보다 못한 탐욕이나 욕정에 던져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거룩합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복음 말씀을 받아들인 곳이며, 예수님의 성체를 받아 모신 곳이며, 성령께서 머무르시는 성령의 궁전입니다. 이 거룩한 우리의 몸을 많은 사람들이 탐욕과 이기심, 향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무심코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비단 사회의 비신자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서도 별 어려움 없이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큰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랑과 희생을 외치며 복음의 정신대로 살아가려는 이 시대의 신앙인들은 주위에 같은 길을 가는 동료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산길을 외로이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예언자가 머지않아 물이 오염되어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미쳐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예언자는 산 속에 살면서 평생 마실 물을 모아 놓았습니다. 과연 곧 세상의 모든 물은 오염이 되었고 그 물을 마신 모든 사람들이 미쳐 버렸습니다. 이 예언자가 세상에 내려가 다시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보려고 하였지만,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그 예언자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예언자는 어쩔 수 없이 산으로 돌아왔고 그래도 자신은 물을 비축해 놓아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이 예언자는 외로움에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람들과 서로 사귀며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세상에 내려가 보았지만, 자신의 올바른 정신으로는 미쳐버린 세상 사람들과 도저히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예언자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저장해두었던 모든 물을 쏟아버리고 자신도 오염된 물을 마시고는 그 미친 사람들과 한데 어울린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 걷는 길, 하느님의 뜻을 따라 거룩함을 찾아 나서는 길은 좁고 험한 산길과 같습니다. 때로는 너무 좁아 동행이 없는 외로운 길입니다. 과연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맞을까 하는 두려움, 비록 멸망에 이른다 하더라도 저 수많은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타협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을 주저하게 만들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최성준 이냐시오신부
평화방송 강론에서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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