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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축복과 은총의 삶을 위하여
  ۾ : 안드레졦     ¥ : 10-10-08 00:02     ȸ : 2092     Ʈ ּ

참 축복과 은총의 삶을 위하여......

이와 같이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사실 율법의 실천에 의존하는 이들은 모두 저주 아래 있습니다.(갈라 3,9-10)

<축복과 저주>
수도생활을 시작하던 때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루하루 점수를 한번 매겨보자.
그래서 매일 90점 이상 맞을 수 있다면 나는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럼 어떻게 점수를 매길까?
아침기도와 미사를 했는가?
아침청소는 잘했는가?
식사 후 설거지는 했는가?
양심성찰은 잘 했는가?
영적독서는 게을리 하지 않았는가?
내가 해야 할 소임에 충실했는가?
다른 형제들이나 이웃에게 나쁜 소리를 한 적은 없는가?
희생은 얼마나 했는가?
개인묵상과 조배는 하였는가?
고백성사는 보았는가?
......

이런 식으로 10여 가지의 항목을 만들어 점수를 부여하고 도표를 만들고
그렇게 하여 나온 종합점수가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하였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영적성장의 길이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그날 점수가 좋으면 히히거리고
그날 점수가 나쁘면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면서
나 자신의 만족도에 은총의 삶을 대비코자 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적인 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경우
내가 겪은 것과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된다.
다분히 율법주의적이고 영적성장을 이런 식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옛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아
때론 흐뭇하고 때론 안타깝기도 하다.

<사실 율법의 실천에 의존하는 이들은 모두 저주 아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이 체험적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저주는 아니더라도 결코 은총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저주 아닌 저주라고 생각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아주 쉬운 것인데 어려운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은총과 축복을 누리는 것이 아닌데
용을 쓰면서 그 길로 은총과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착각하니 말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주장한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축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노력의 대가이지 축복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축복은 부여되는 것인데 그 길은 믿음에의 동참을 통해서 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동참함으로써 자연스레 주어지는 것이 은총이요 복이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 안에서 이런저런 것을 행하였기 때문에 축복을 받고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는 논리는 그 자체로 오류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쓴다 하더라도 본성의 지배를 받고 사는 이 세상 삶 동안
우리는 결코 항상 A 학점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집착해서 A 학점을 받을 정도라고 생각하면 천국이고
그렇지 못하면 연옥이나 지옥이라고 우리 스스로 규정하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A를 받든 F를 받던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 축복과는 무관함을 깨우쳐야만 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께 대한 믿음 때문에 축복과 은총을 베푸신다는 깨달음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이적을 보고도
그것이 베엘제불의 권능으로 된 것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초보자 시절
나름대로 열심 하려했던 그 때를 회상하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본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를 당신 제자들의 무리의 삶에 참여하게 하심으로써
그 자체로 엄청난 축복과 은총을 베푸심을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드린다.

축복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그리고 수많은 활동이나 노력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렇게 할 때 진정한 축복이 저주 아닌 저주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00년 역사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 대열에 참여함으로써
그 축복을 공유하고 있음에 진정 감사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참 축복이요 은총이기 때문이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꼬회) 홈페이지
 '말씀 나누기 방’에서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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