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우르바노 4세 교황이 주석하던 오르비에토 두오모. 성체의 기적이 일어난 곳에 건립된 1290년부터 3세기 동안 건립된 대성당의 정면은 쭉쭉 하늘로 뻗은 고딕양식과 반원형 둥근 문을 중심으로 한 로마네스크 양식이 결합된 걸작품이다. 크고 웅장할 뿐 아니라 정면의 모자이크화가 섬세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마치 대리석을 밀가루처럼 꼬아 만든 문 장식과 벽 장식도 이채롭다. 사진=권정호 전 매일신문 사진부장.
② 4대 복음사가 상-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정면은 성서의 내용을 세밀하게 묘사한 33개의 건축물과 152개의 조각품, 90개의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어 있다. 문 위에 장식되어 있는 4대 복음사가 상. 왼쪽부터 천사·마테오사가의 상징, 사자·마르코사가, 독수리·요한사가, 황소·루카사가.
③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길에 있는 오르비에토는 도시 전체가 예술과 삶과 신앙이 하나로 결부된 성지이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슬로푸드 도시이다. 자동차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오르비에토에서 사람들은 자연친화적인 슬로푸드와 이곳에서 생산하는 백포도주 ‘오르비에토’를 마시며 신앙중심의 삶을 살아간다. 중세적인 삶을 사는 오르비에토에서 삶의 안식과 기쁨을 느낀다면 지나친 역설일까?
④ 오르비에토의 보석인 성체포(성물함 중앙). 성체성혈이 주님의 몸과 피임을 의심하는 사제가 미사를 드릴 때 성체에서 흐른 핏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보인다.
⑤ 오르비에토 두오모 옆모습.
⑥ 오르비에토 두오모(⑤번 사진) 세 번째 장식용 벽기둥 4대 복음사가 상의 독수리·요한사가 밑에 있는 부조에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내용이 담겨 있다. 사진에는 성처녀 마리아가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성령으로 잉태됨을 듣는 것과 아기예수의 이집트 피난 등을 새겼다.
로마에서 피렌체를 향해 100㎞쯤 가면 푸른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성채 같은 작은 도시, 오르비에토를 만난다. 오르비에토는 세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이탈리아에서 대표적인 슬로 푸드 마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산 백포도주 ‘오르비에토’로 유명하다. 이곳 오르비에토 시장은 슬로 푸드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주민들을 자연친화적이고 생명존중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이끈다. 나머지 하나는 오르비에토가 성체성혈의 기적이 일어난 성지이자, 아직도 중세풍의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신앙 도시라는 점이다. 이곳 오르비에토 두오모(대성당)는 우르바노 4세 교황이 계셨던 곳이기도 하다.
◈ 슬로 푸드를 즐기는 중세풍 도시
무엇이든지 예술로 승화하는 능력을 타고난 이탈리아 사람들의 기질과 문화를 잘 볼 수 있는 성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르비에토이다. 피렌체, 볼로냐, 베니스, 로마 등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이탈리아 여행’을 쓴 괴테가 왜 이렇게 아름답고 경건한 오르비에토에 다녀가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영혼이 맑아지고, 예술과 신앙이 자연 안에서 하나됨을 느낄 수 있다. 로마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여 달려와서 오르비에토 버스정류소에 내리면, 다시 산악궤도열차를 타야 오르비에토 두오모에 갈 수 있다. 테너 파바로티의 음성으로 즐겨 들었던 이탈리아 민요 ‘푸니쿨리 푸니쿨라’의 본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푸니쿨리차를 타고 7, 8분 올라가면 오르비에토 성문에 다다른다. 고도 300m의 화산암에 자리잡은 오르비에토 성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큰 도로하나 없이 푸른 나무에 둘러싸인 중세의 돌집, 벽돌집들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다. 참 예쁘다. 좁은 골목길을 끼고, 집집마다 화분이 놓여진 아름다운 골목길을 걷다보면 천국이 따로없다 싶다. 빨리빨리도 없고, 관광객이 들어와도 크게 살 것을 강요하지 않고, 성물을 파는 가게들만 크고 작은 교회 가운데에 조용하게 자리잡고 있다. 자동차가 거의 없는 오르비에토의 거리에 서면, 무엇이 우리의 삶에 안식과 기쁨을 주고, 평화와 예술을 창조해내는지 저절로 느껴진다. 정신없이 바쁘게, 앞만 쳐다보고 사는 게 과연 옳은가?
◈ 성체에서 피가 흘러내리다
오르비에토의 두오모(Duomo·대성당)는 ‘볼세냐의 기적’을 기리기 위해 1290년부터 300년 동안 건립된 주교좌성당이다. 하늘궁전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고딕 양식으로 하늘에 닿을 듯 자리잡고 있는 오르비에토의 두오모는 기적이 일어난 현장이다. 13세기, 보헤미안 사제인 프라하의 베드로는 매일 먹고 마시는 성체성혈이 과연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신앙심을 다잡기 위해 1263~1264년 로마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한 제자였다가, 부활한 예수로부터 너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 번 거듭받고,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더 잘 아십니다라는 진실한 신앙 고백을 하여서 교회의 반석(초대 교황)이 된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찾아 흔들리는 신앙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로마로 돌아오던 길에 오르비에토와 지근거리인 볼세냐의 산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그는 또다시 시험에 들었다. “과연, 이 성체성혈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일까.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일까.”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참존재에 대해 억누를 수 없는 의구심으로 갈등하던 그는 깜짝 놀랐다. 성찬의 전례를 하던 중에 성체에서 “뚝, 뚝” 피가 흘러내렸다. 성체에서 흘러내린 피는 사제의 손가락을 적시고, 제대와 성체포 위로 흘러내렸다.
◈ 성체성혈대축일 지정
프라하에서 온 사제는 마치 저 위에서 제맘 속을 꿰뚫어보는 것 같아서 몹시 당황하였다. 처음에는 피를 감추려고 하였으나 곧 미사를 중단하고 볼로냐 인근 마을인 오르비에토에 주석하고 있는 교황(우르바노 4세)을 찾아뵈었다. 교황은 보헤미안 사제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 진상 조사에 나섰다. 그가 보고한 사실이 진실임이 밝혀지자 우르바노 4세 교황은 피를 흘린 ‘그 성체’와 피묻은 성체포를 오르비에토로 모셔오도록 명하였다. 모든 것을 조사하니 진실이었다. 곧 ‘성체의 기적’으로 선포되었다. 이 ‘성체의 기적’을 기념하여 14세기부터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을 지내고 있다. 오르비에토의 두오모에 가면 지금도 피묻은 성체포를 볼 수 있다. 신앙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신앙임을 확인할 수 있는 오르비에토 성지를 찾으면 꼭 성체성혈의 기적이 나타난 성체포를 가슴깊이 느껴볼 일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보석 중의 보석이다. 교황청이 공인한 성체성혈의 기적이 일어난 지 844년. 그 기적의 성체포를 오늘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마치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축소판처럼 아름다운 성물함(1339년 제작) 안에 성체포가 모셔져 있다. 숨 죽이고 가만히 본 성체포에는 금방 흘러내린 선혈처럼 붉지는 않지만, 아직도 혈흔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사물의 알파요, 오메가인 하느님 아버지가 프라하 지방의 경건하면서도 뜨거운 한 사제를 구하고자 한 그 사랑이 느껴진다.
[매일신문, 2007년 5월 10일, 글 사진·오르비에토에서 최미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