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오늘답게 사는 삶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예수께 말하기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단식할 수 있습니까? 그들 가운데 신랑이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 그 날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입니다.
아무도 생베 조각을 헌옷에 대고 깁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헌옷에 기워댄 새 헝겊이 그 옷을 당겨 더 형편없이 찢어집니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그 가죽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가죽부대도 못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는 법입니다.”(마르코 2,18-22)
<묵상>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는 법입니다.”
이 말씀은 새로이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작자 미상의 ‘오늘’이라는 시 한편을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너 소유한 모든 것 중 가장 귀중한 것은 ‘오늘’이니
너의 구원자 오늘은 어제와 내일이라는 두 도적사이에서 자주 십자가에 달리운다.
기쁨은 오직 오늘의 것, 어제나 내일이 아닌 다만 오늘 너는 행복할 수 있으리니.
우리네 슬픔의 대부분은 어제의 잔재이거나 내일에서 빌려 온 것 일뿐,
너의 오늘을 고스란히 간직하라.
너의 음식, 너의 일, 너의 여가를 향유하라.
오늘은 너의 것이니 하느님께서 오늘을 네게 주셨다.
모든 어제는 거두어 가셨고, 모든 내일은 아직 그분의 손안에 있도다.
오늘은 너의 것이니 거기서 기쁨을 취하여 행복을 누리고,
거기서 고통을 취하여 사람이 되라.
오늘은 너의 것이니 하루가 끝날 때
“나 오늘을 살았고, 오늘을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 있게 하라.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 나라라는 아름다운 미래를 향한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주님께서 내려주실 완성된 미래는 오늘 안에서 서서히 준비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오늘에 충실하여야 하며,
오늘에 충실하기 위해 오늘의 의미를 올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구세주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통회와 슬픔의 단식을 했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오늘’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알 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결혼식장에서 통곡하고 초상집에서 환호성을 올리는
미련함을 지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신앙인이라면 주님과 함께 웃고 함께 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이 웃어야 할 때라면 웃어야 하고,
슬퍼하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오늘 이 시간을 오늘을 사는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는 법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 200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