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사랑
소설가 양귀자씨의 “천년의 사랑”을 읽어보셨습니까?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세상 한 가운데서, 삶의 온갖 시련과 번뇌 속에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천년 전부터 사랑했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비록 여자를 한 번도 본적이 없을뿐더러 여자와 멀리 떨어진 지리산 산자락에서 살아가지만, 남자는 언제나 영적으로 그녀와 긴밀한 유대와 일치를 이룹니다. 천년 동안이나 기다려온 소중한 사랑이었기에 그 둘 사이에는 강한 텔레파시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여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남자는 염력을 발휘해서 목숨을 구해주기도 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무척 황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소재였으니까요.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왠지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살이에만 몰두해있던 제게 이 소설은 영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혼의 일은 뒷전이고 육체만 따라 사는 부자를 향해 아주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루가 12,13-21)
영원한 생명이나 영적인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동물적인 감각과 말초적 본능에 따라 세속적인 삶만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주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서라면 갖은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계획을 짜고 준비하며 철두철미하게 실행에 옮기는 우리가 영혼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한번 반성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영적 성장과 영적 건강을 위해서 과연 어떤 투자를 하고 있습니까?
인간은 육체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영혼도 함께 지닌 존재입니다. 육적인 동시에 영적인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언제까지나 육적인 생활만을 고집한다면 그것보다 비참한 일이 다시 또 없습니다. 우리가 감각적이고 세속적인 기쁨만을 추구할 때 우리는 동물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본래 영적 존재였던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영적인 능력을 키워나가며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은 우리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보다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영의 눈으로 이웃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좀 더 인내할 수 있고 보다 관대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영적인 인간이 될 때 상처받은 이웃들을 위한 영혼의 치유자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나아갔을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결국 영혼이며, 우리가 세상에서 쌓았던 영적 보화들만이 우리에게 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세상의 기준이나 잣대보다는 하느님의 눈,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영의 눈으로 세상과 이웃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2001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