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 사람
연중 제15주간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예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이웃 사랑의 의미를 전해주며 시작되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동화 마냥 기억에 떠올려봅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강도들을 만나서 돈을 뺏기고, 그야말로 반쯤 죽임을 당해 길에 버려집니다. 온 몸은 피투성이고, 누군가 그를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것이 뻔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가 쓰러진 그 길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었고, 그래서 그가 사람들의 눈에 띨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길에 세 사람의 행인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사제였고, 두 번째 사람은 레위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사마리아 사람만이 이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주고, 예수님의 칭찬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사마리아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가 아니라, 사제와 레위를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사제와 레위는 나쁘게도 쓰러진 사람을 피해 갔습니다. 그런데 사제와 레위는 성전에 관계된 인물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성전에 가기 위해 피를 흘린 어떤 것도 손에 대어 부정 타는 일이 없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쓰러진 이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 하느님에 관한 것이기에 그를 도와줄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오히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에게 아무 부담 없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소위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정성이라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사랑의 기회를 포기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이 더욱 이런 의미를 뒷받침해줍니다. 하느님은 사랑하라고 율법을 주셨지만, 사람들이 그 율법으로 사람을 죽어가게 할 수 있다는 무서운 현실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우리에겐 그런 모습이 없는지, 분명 사랑을 실천해야 할 자리에 하느님의 이름이나 레지오의 이름으로 그 자리를 피해야 하거나, 서둘러 도망쳐야 하는 일은 없습니까? 예를 들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보호자들은 환자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신앙의 행위에 관면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성당에 나와야 한다고 우기는 신자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성당에 나오면 좋겠지요. 하지만 환자를 팽개치고, 아니면 가정을 팽개치고 주님 앞에 나오라고 예수님은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바로 옆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임을 분명 예수님은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한 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자리는 바로 곁에 있습니다.
인터넷 성당 정호 빈첸시오 신부 - 2001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