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묵상기도 방법은 구송기도를 묵상기도로 만드는 일입니다.
구송기도라도 의식적으로 정성스럽게, 내가 이 기도를 누구에게 드리고 있는가?
드리는 나는 누구인가?
드리는 이 기도의 뜻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잘 드리기만 하면 그것이 곧 구송기도이면서 묵상기도인 것입니다. 구송기도를, 생각은 다른데 가 있으면서 입술만 움직이면서 드렸다면 그것은 올바른 하느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송기도라도 마음과 마음이 통한 상태로 대화가 되도록 잘 드렸다면 그것은 비록 구송기도이지만 묵상기도가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주의 기도를 드릴 때, “하늘에 계신” 하며 먼 하늘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 안을 바라보고,
“우리 아버지” 하면서 예수님의 인성과 서로 눈이 맞은 상태로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위주로 드렸다면 이것은 훌륭하게 마음으로 하는 묵상기도가 된 것입니다.
이 때 “내가 이 기도를 지금 누구에게 드리고 있는가”(완덕의 길 22,3)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리고(재현 Representar a Cristo) 예수님과 서로 눈길이 맞은 상태로 드린다면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우정의 나눔”(성녀 예수의 데레사 자서전 8,5)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마음의 기도(oracion mental)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신다고 믿었으면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영화 화면에 나타나듯 선명한 모습이 아니고 어슴푸레하게 떠올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천국에 가서 맞대면하듯이 그렇게 바라 뵐 수는 없고 다만 신앙으로 거울에 비춰보듯이 희미하게 밖에는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주전자를 은도금을 하면 금주전자이지만 은주전자처럼 보이듯이 이 세상에서 기도 안에서 신앙으로 어슴푸레하게 만나 뵙는 그 예수님과 성모님은 천국에 가서 만나 뵙게 될 바로 그 예수님과 성모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과 영혼의 눈으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통해서 기도 안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만날 때는 감각적인 것보다 내적(內的)이고 인격적(人格的)인 마음으로의 만남에 더 주력해야 합니다. 또 성모송을 드릴 때는 아름다우신 성모님께서 어머니의 눈으로 사랑스럽게 지금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고 믿으면서 마음으로 서로 일치가 된 상태로 드립니다. 이 때 우리는 성모송을 통해 성모님을 직접 실제로 만나는 것입니다.
주의 기도와 성모송이 자주 반복해서 나오는 “십자가의 길” 기도와 “묵주의 기도”를 가지고도 훌륭하게 하루 2시간의 묵상기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이때 14처를 돌지 않더라도 묵상기도 자세로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14처의 매 처 제목과 후렴을 한 다음, 긴 기도문을 생략해도 되며 곧 이어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예수님과 성모님을 만나는 마음으로 드리고, 영광송과 “어머니께 바치오니....”를 하며 마음속으로 그 다음 처를 향해 갑니다.
이 십자가의 길 묵상기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 기도와 성모송입니다. 수난의 장면이 2천년전 예루살렘이 아닌 현재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 장면을 잠간동안 떠올립니다. 그 장면을 묵상하느라고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그 장면 안에서의 예수님과 성모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서로 마음을 통하고 눈을 맞추는 데 더 마음을 기울입니다. 주의 기도를 드릴 때는 먼저 예수님과 마음으로 만남이 이루어진 다음에 기도의 뜻보다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위주로 드립니다. 이때 줄곧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한 순간 한 순간 잠간동안씩이라도 “나”를 보고 계시다고 믿었으면 기도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선이 마주친 것만을 참다운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비행사가 비행기를 조종한 시간이 비행조종 기록시간인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 마음이 통한 시간만이 기도를 참으로 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야구를 할 때 투수가 포수와 신호를 맞추듯이 주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고 성모송을 드릴 때마다 성모님과 눈을 마주친다면 잠간동안이지만 실제로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가지고도 “십자가의 길” 묵상기도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통해 예수님과 성모님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때 주의 기도를 드릴 때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만나고 성모송을 드릴 때는 성모님을 마음으로 만나는 것을 위주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드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입니다.
등산을 할 때 가파르고 높은 산길에 매어놓은 밧줄을 잡고 가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주의 기도와 성모송이 자주 나오는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를 수단으로 하는 묵상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끄는 확실하고 안전하며 효과적인 묵상기도 방법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지루하지 않고 졸리지도 않으며 매일 같이 궐하지 않고 확실하게 일정한 시간을 묵상기도로 보낼 수 있습니다. 설사 분심이 들더라도 이 방법으로 하면 빨리 기도를 하던 원위치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묵상기도 자세는 장궤를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장궤가 어려운 분들은 기도의자(발을 넣고 꿇어앉는 비스듬한 밑 받침대)에 꿇어앉아서 하는 것도 좋습니다. 높이 두 뼘 정도의 낮고 평평한 의자에 허리와 목을 펴고 히프(엉덩이)를 마치 어린 아기를 업는 자세로 뒤로 빼고 넓게 앉아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과 성모님을 눈을 감고 마음으로 정면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드리면 정신집중이 잘되고 마음이 맑아집니다. 장궤를 할 때나 앉을 때나 설 때나 원형(原型)자세를 취하는 것이 몸과 정신에 가장 이상적이며 힘이 덜 들게 됩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갓 태어날 때의 원형(原型)은 허리뼈가 활처럼 휘어진 모양으로 허리가 들어가고 꼬리뼈 부분은 뒤로 휘어졌습니다.
원형자세를 취하는 요령은 백회(정수리)와 회음(항문과 요도의 중간부분)이 수직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는 똑바로 세워지고 가슴과 배는 앞쪽으로 나오며 히프는 뒤쪽으로 내밀게 되며 무릎은 어깨 넓이로 벌어집니다. 이 때 발은 안쪽으로 끌어당기게 됩니다.
묵상기도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우정의 나눔이므로 예수님과 성모님을 앞에 모시고 바라 뵙고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불교에서 하는 명상 자세는 생각을 하는 자세이지만,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에서 하는 기도는 명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이고 대화이므로 서로 마주보는 자세를 취해야 마땅합니다. 아플 때나 힘이 없을 때는 누워서 해도 되고, 차안에서나 걸어갈 때는 서서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앞에 예수님과 성모님을 모시고 현실적으로 만나 뵙는 몸과 마음의 자세를 취하면 됩니다.
박종인 라이문도 수사 신부님의 글
마산 가르멜 수도원 - 200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