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만큼 나 더 살아야......
"이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복음 6,52-59)
돈보스코에게 있어서 성체성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수렴되는 중심이었습니다. 돈보스코의 생애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체성사에 대한 찬미의 송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보스코는 복도에서 미사참례 하러 가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당부하곤 하셨습니다. “아이들아! 너희들은 지금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일,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며, 그분께 가장 큰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일을 하러가고 있음을 절대 잊지 말아라.”
돈보스코를 가장 가까이 모셨던 체리아 신부의 증언을 통해 돈보스코의 탁월했던 성체신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돈보스코께서 성체성사를 집전하실 때에는 다른 사제들과는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습니다. 그분의 미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사 중에 돈보스코의 얼굴은 자주 감동과 기쁨의 눈물로 얼룩지곤 했습니다. 때로 그분의 얼굴이 얼마나 성스러워 보이든지 마치 살아 계신 예수님을 직접 뵙는 듯 했습니다.”
이런 돈보스코의 거룩한 미사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당시 개인 집에 경당을 두었던 부자들은 서로 자기 집에 돈보스코를 모셔서 미사를 드리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왜 돈보스코께서 집전하시는 미사는 다른 사제들과 달랐겠습니까?
그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돈보스코께서 쇼맨십이 강해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비결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바로 준비였습니다.
그분은 저녁시간에 접어들면 침묵 가운데 다음날 아침 미사를 준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미사 전까지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면 할수록 부끄럽게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과연 언제쯤 미사다운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소홀한 준비, 습관화된 전례, 삶과 연결되지 않는 단지 예식만의 성체성사는 주님 앞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성체성사는 우리를 행동하게 합니다. 우리를 헌신하게 합니다.
참된 영성체는 우리에게 이웃이나 지역, 학연이나 지연, 빈부격차, 인종이나 국가와도 같은 모든 장벽을 허물어뜨리게 하여 우리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연대하게 합니다.
진정한 미사는 우리를 이웃의 아픔에 동참케 하며, 보다 큰사랑에로 나아가게 합니다.
참된 영성체는 우리를 세상의 빵이 되게 하며 구원의 샘이 되게 합니다.
그때 세상은 우리의 얼굴에서 생명의 성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부디 영성체를 잘하십시오.
영성체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옆 사람에게 방해주지 않기 위해서 엉겁결에 절대 따라 나가지 마십시오.
보다 철저한 준비와 참된 기다림으로 생명과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십시오.
그리고 매일의 일상에서 성찬의 삶을 사십시오.
그때 참된 영성체는 완결되는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2002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