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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나눔] 6,25 예순 두 돌을 지내며 - 강우일 주교님
  글쓴이 : 요안나프란…     날짜 : 12-07-02 04:23     조회 : 2100     트랙백 주소
' 6·25 예순두 돌을 지내며’



근래에 와서 ‘종북’이란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처음엔 소위 북한의 주체사상을 떠받드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대하거나 정부가 하는 사업을 정면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싸잡아서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어휘가 자꾸 등장한다. 정치적으로 노선이 좀 마음에 안 든다거나 너무 앞서 나간다 싶으면 무조건 종북 세력으로 분류하려고 한다.

어느 시대나 좀 튀는 사람, 너무 앞서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딱지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 딱지가 붙은 사람은 사회의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고 그런 위험인물은 제거하거나 짓밟아도 괜찮다는 통념이 있었다. 실제로 진실이 어떤 것인지 올바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는 그런 딱지를 붙여서 제거해 버리는 사례가 역사 속에는 자주 일어났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그런 딱지가 붙어서 하루아침에 인생이 절단난 사람들이 많았다. 조선시대에 가장 위력을 발휘한 딱지는 ‘역적’, ‘역도’라는 말이었다. 실제로 역모를 꾸미지 않아도,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많은 사람이 역적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고 사회에서 매장당했다.

일본제국주의시대에는 ‘비국민’이라는 단어가 무서운 타이틀이었다. 일본 사람들 중에도 천황의 가르침에 절대 순종하지 않거나, 정부의 정책을 고분고분하게 수용하지 않는 사람은 비국민이라고 불렀다. 한 번 비국민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고등계 형사가 따라붙어 감시의 눈을 번득였고 절대로 사회에서 안정되고 좋은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유럽에서 가장 무서운 딱지는 ‘유다인’이라는 말이었다. 유다인이라는 딱지가 한 번 붙으면 그 사람은 평생을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9·11 테러가 난 다음 한참 동안 미국에서 제일 무서운 단어는 ‘무슬림’이라는 말이었다. 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는 신자를 일컫는 말이다. 9·11 테러가 발생한 뒤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은 무슬림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테러리스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어떠한 형태의 테러도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중동지역에서 이민 온 무슬림들은 아주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따돌림 당하고 교내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른들도 주변 사회에서 냉랭하고 적의에 가득 찬 시선을 맞으며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다 자신과 생각이 좀 다르고 사는 방식이 조금 다른 사람들의 그 다름을 인정하거나 수용하지 못하고, 나와 다르다는 것 때문에 차별하고 따돌리고 위협하고 억압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아 왔다.

제주에서는 60년 전 4·3의 비극이 벌어지고 있을 무렵 ‘산사람’이란 딱지가 횡행했다. 산에 잠복하며 무장투쟁을 한 좌익 빨치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산사람과 혈연으로 이어지거나 한 번이라도 관계를 맺은 사람은 모조리 처단 대상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전체에서 오랫동안 가장 무서운 딱지는 ‘빨갱이’라는 딱지였다. 해방 이후 1990년대에 들어와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 딱지는 조선시대의 ‘역적’과 마찬가지의 위력을 발휘했다. 공산주의 사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도 일단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사람,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은 모두 이 딱지를 붙이고 감옥도 보내고 사형도 시키고 마음대로 처리했다.

조국이 그리워서 한국말도 배우고 역사, 문화도 배우고자 한국에 유학 왔던 재일교포 유학생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빨갱이 첩자라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잔인무도한 고문을 당하고 감옥생활을 여러 해 살았다. 다행히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국민이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피력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되는 이야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고 나서 이 빨갱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최근 이 빨갱이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한 것이 바로 종북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딱지는 좋은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남을 칭찬하고 빛내기보다는 남을 비판하고 모함하고 단죄하여 마지막엔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런 파괴적인 호칭은 한 공동체 안에서 편을 갈라서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솎아내고 쫓아내고 말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종북이라는 단어에 이어서 ‘국가관’이라는 단어도 등장한다. 국가관이 다른 사람은 어쩌자는 말인가? 국가관이 이상한 사람은 모두 땅 끝으로 밀어내자는 이야기인가? ‘국가’란 역사 속에서 변천하여 왔다. 현대에 와서 수많은 국가가 새로 세워졌지만 이 국가들이 소수 독재자들의 권력과 탐욕의 도구가 되어 힘없는 민초들을 짓밟고 희생시킨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불의와 비리가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진화시키고 있다. 국가도 백성의 공동선과 정의를 짓밟을 때는 얼마든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인권 위에 군림하는 절대가치는 아니다. 참으로 성숙한 민주 사회는 국가관이 다른 사람도 포용할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종북으로 몰아세워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는 행위는 6·25 때 공산당이 인민재판을 열고 죄 없는 사람에게 ‘반동분자’라는 딱지를 붙여 제거하려 했던 것과 무엇이 다를까?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1-22). 예수님은 자기 형제를 바보, 멍청이라고 멸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적 모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형제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과 마찬가지의 파괴적 폭력 행사라고 단언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형제에게 종북이라고 손가락질하고 비난과 욕설을 쏟아 붓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하실까?

적의를 풀풀 풍기는 이러한 호칭은 그리스도인들이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되는 비복음적인 용어다. 복음서에 보면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옛날 랍비들은 세 번 용서하면 할 만큼 한 것으로 간주해 주었다. 그러니 베드로는 일곱 번이라고 하면 예수님도 충분히 만족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을 일으키고 무수한 생명을 희생시킨 북한정권은 우리에게 정말 용서하기 힘든 존재다. 한 손으로 도움을 청하고 외교적인 줄타기를 하면서도 다른 손으로 서해대전을 일으키고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여 긴장을 고조시키는 이들의 위험한 도박에 대해 우리는 참으로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만 언제까지, 몇 번이나, 이런 비인도적인 행위를 용인해야 하는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도 베드로 사도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도대체 몇 번이나 참아내야 합니까? 이제는 참을 만큼 참지 않았습니까? 앞으로는 응징만이 이들의 비이성적인 만행을 저지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북한이란 나라는 참으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21세기가 되었는데 아직도 우상화된 독재정권이 삼대째 이어지고 있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엄청난 경비를 쏟아 부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계속하는 나라다. 하지만 그렇다고 2,400만이나 되는 북한 백성을 모두 응징해야 할 적이요, 원수로 삼아야 할까? 북한 백성 대부분은 분명히 주체사상을 줄줄이 암송하고 독재자를 찬양하며 그 죽음을 눈물 흘려 애통해한다. 그렇다고 이 수많은 백성을 모두 계속 적대하고 징벌과 응징으로만 다스린다면 세상은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북한 백성들도 악마의 자녀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이 수많은 백성을 적이요, 원수로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 자녀들이 아니다.

요나 예언서에 보면 하느님께서는 요나에게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원수의 나라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찾아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셨다. 요나는 이 하느님의 명령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니네베에 가기 싫어서 자꾸 도망쳤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니네베에 가서 회개를 선포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임금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옷을 입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모습을 보시고 마음을 돌리시어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그런데 요나 예언자는 하느님이 이렇게 마음을 돌리신 것에 화가 나서 니네베 마을 밖으로 나가 주저앉았다. 마침 아주까리 하나가 있어 그 그늘에서 쉬며 한낮의 고통스런 더위를 피하고 있었는데 새벽에 하느님이 벌레 하나를 보내시어 이 아주까리를 갉아먹게 하셨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어 투덜거렸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물으셨다.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 그런데 하물며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0여년이 지났다. 우리도 이제는 원수의 나라 니네베에 요나를 파견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세상의 논리를 벗어나서 선한 이에게나 악한 이에게나 해를 비추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세상에 알리고 전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종북 타도의 깃발을 치켜들며 폭력적인 언어로 세상 속에 갈등과 적의를 증폭시키는 일은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6·25 예순두 돌에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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