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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나눔] 교우님들, 경제를 함께 공부하지
  ۾ : 요안나     ¥ : 12-02-22 01:45     ȸ : 87894     Ʈ ּ

교우님들, 경제를 함께 공부하지 않겠습니까?

-  FTA와 관련한 고찰 -

2012. 2. 17.
강우일 주교

1.  우리나라가 산으로 가는가, 바다로 가는가?

나는 본디 수학에 약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산수 점수는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도 재정 장부나 예결산 서류 같은 것을 접하면 뭔가 비밀문서를 보는 것 같고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가 않다. 그래서 대학에 다닐 때도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나 관심이 일지 않아 한 번도 제대로 경제학 강의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제라도 경제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새삼 부(富)에 대한 내 생각이 바뀌거나, 이른바 재테크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경제 때문에 너무 고통 받고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미 대륙이 최근 재정 위기를 맞으며 휘청거리고 있고 그 영향으로 아시아도, 한국 경제도 침체기에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000조 원에 육박한다고 들었다. 또 지난 몇 년간 정부가 벌인 대규모 사업 때문에 국가 빚이 급증하고 있어, 2010년 말 정부의 부채가 392조 원인데 비금융공공기관과 금융공공기관의 부채, 그리고 공적연금/책임준비금 부족액까지 다 합치면 1,848조 원까지 된다고 한다. 우리 국민 전체 GDP의 두 배에 가까운 액수라고 한다. 미국의 재정 위기, 유럽의 재정 위기 이야기가 최근 많이 거론되지만 국가 재정 위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또 한국 정부는 지난해 말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맺고 곧 발효를 앞두고 있는데, 이제는 중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준비에 착수한다고 하여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고 우리나라 앞날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FTA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부작용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에 돌이키기 어려운 재앙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지적들이다. 나도 관계 자료를 들여다보니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사실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나는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무엇인지 우선 자세히 들여다보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외교통상부가 인터넷에 게재한 한미 FTA 협정문을 살펴보니 한글판만 무려 700쪽이 훨씬 넘는다. 영문까지 합하면 1,500쪽에 이른다. 또 본문과 부속서가 별도로 나뉘어 있어 이 협정문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더욱 쉽지 않다. 나 혼자서 다 읽어내기에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사제들 다섯 명과 나누어 공부하기로 했다. 한 달을 두고 본문과 다양한 자료들을 들여다본 뒤에 함께 모여서 대화를 나누었으나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 협정을 순식간에 통과시킨 우리 국회의원들이 모두 이 문서의 내용을 온전히 숙지하고 이해한 뒤에 찬성표를 던졌다면 이분들은 대단히 뛰어난 독해력과 명석한 판단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설사 관계당국의 통상전문가들과 우리 국회의원들이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이라 해도 이 사안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크게 좌우하는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내용인지라, 그들의 사고와 판단에만 맡기고 일반 국민은 팔짱 끼고 맥 놓고 있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평범한 국민들도 경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정치인들이 제대로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이 나라가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월 25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제42회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열렸다. 세계 상위 1%들이 참석해 온 이 세계경제포럼은 늘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깃발처럼 내세워 왔다. 하지만 올해는 개막 전날인 1월 24일 이 포럼의 수장 격인 클라우스 슈바프 제네바대학 교수가 “(자본주의 행태에 대해) 반성한다.”는 사과의 뜻을 밝히는 등 포럼 본래의 철학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시도하겠다는 뜻이 강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언급하며 서구식 자본주의는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제 당장 경제 모델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가장 옹호하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이제 그 결함과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대표적 총아인 FTA에 우리나라의 미래를 송두리째 맡기려고 하는 정부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국민 모두가 깨어 살펴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 FTA란 무엇인가?

FTA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역에 장애가 되는 모든 종류의 관세나 규제를 없애고 자유롭게 교역을 추진해 가자는 협정이다. FTA는 미국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가 추진하고 있는 국제교역의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칠레, EU, 싱가포르, 페루, 인도 등과 FTA를 맺었고, 미국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 호주 등 여러 나라와 이미 FTA를 체결하고 있다. 국제교역에서 이렇게 국가 간의 관세나 규제를 없애고 좀 더 자유로운 교역을 촉진하려는 흐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세계 경제의 추세다. FTA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간의 경제적 갈등을 완화하려고 국제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이미 그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취지로 194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23개국이 참여하여 출범한 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체제는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르기까지 8차례 단계의 협정을 거치며 무형의 협정체제로 계속되었으나, 1995년에 이르러서는 ‘협정’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세계무역기구(WTO)를 창설하면서 국제경제 분야에서 준사법적인 강제력을 동원하는 상설 국제무역기구 체제로 탈바꿈하였다.

3. 국가 간 무역협정의 탄생 경과

GATT 탄생의 배경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미국은 자국 영토 안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으나 유럽 등지에 군수품과 군자금을 공급하며 지원한 덕에 전쟁이 끝난 뒤 전승국의 위치에 섰고, 세계 제1의 채권국가가 되어 세계의 금융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미국은 이렇게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중소비시대를 맞으며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농업의 기계화로 농민들이 일자리를 잃어 구매력이 크게 위축되었고, 공업 분야에서는 대량생산으로 공산품의 과다생산이 이루어지면서 1929년에 이미 미국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하여 결국 대공황을 맞았다. 공장이 쓰러지고 은행이 문을 닫으며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여 실업자가 급증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경제공황은 순식간에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미국은 국가가 주도하는 뉴딜 정책으로 산업부흥을 이루며 경제회복에 나서는 한편 ‘스무트-할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을 제정하여 2만 개 이상의 수입품에 대해 최고 400%에 이르는 관세를 부과해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 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도 타국 제품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보호무역 체제를 강화하였기에 국제무역시장은 더욱 침체되고 공황은 더 심각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식민지를 모두 잃고 패전에 대한 배상금 채무가 쌓여 경제는 극도로 위축되고 실업자가 600만 명에까지 이르렀다. 이탈리아, 일본 등도 공황 후의 경기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런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 위기에 대응하려고 대내적으로는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을 우선하는 전체주의 이념을 내세우고 무기 생산을 늘리며 주변 군소국가를 침략 합병하는 팽창주의 정책을 폄으로써 자신들의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려 하였다. 이러한 팽창주의 정책은 다른 나라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불꽃이 댕겨졌다.

이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상자와 피해를 가져왔고 그 참극을 경험한 열강은 전쟁의 원인이 각국의 보호무역에 따른 경제적 갈등에 있었다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다시 이러한 전쟁의 참극을 재현하지 않으려면 국가 간의 무역장벽을 허물고 원활한 교역과 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이를 위한 국가 간의 무역협정(GATT)을 출범시키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GATT의 출발은 세계가 전쟁을 피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자는 좋은 의도를 포함하고 있었다.

FTA 탄생의 배경
GATT 체제는 처음에는 세계무역에서 장애가 되는 모든 요인을 없애려고 관세율을 인하하고 수입제한을 폐지하며 회원국 사이에서 서로 최혜국대우 원칙을 준수하여 세계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꾀하자는 선진국 중심의 무역협정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협정만으로는 강제력이 동반되지 않으며, 회원국 전원이 찬동하지 않으면 효력을 발생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이에 분쟁해결을 위해 좀 더 힘이 있는 상설기구의 설립이 요청되었고, GATT 회원국들은 국가 간 무역 분쟁을 조정하는 준사법적인 국제무역기구로서 WTO를 출범시키게 되었다. 다만 WTO는 GATT보다 좀 더 실제적인 효력을 갖는 국제기구가 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여러 국가들 간의 총체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에 미국을 필두로 몇몇 나라는 WTO 같은 다자간 협정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수의 나라들끼리 FTA(양자 간 자유무역협정)를 맺고 협정국 사이에서는 되도록 모든 규제와 장벽을 철폐하고 효과적인 자유무역 실현으로 경제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이다. FTA는 둘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이 상호 간에 수출입 관세와 시장점유율 제한 등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기로 약정하는 조약이다. 그뿐 아니라 FTA는 해당 국가 간의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단순한 관세인하나 상품의 수입제한 철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들의 경제를 구조적으로 통합하고 모든 종류의 상품, 비상품(서비스, 지적재산권 등)과 모든 경제활동이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수행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FTA는 원론적으로는 국가 간의 보호무역 장벽을 치우고 국가 간의 갈등의 요인을 제거하자는 GATT의 목적을 그대로 이어받은 선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토양
그런데 GATT에서 WTO로 그리고 다시 FTA로 이어지는 세계 교역 자유화의 배경에는 경제를 활성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국가와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를 최대한 완화하고, 시장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능하도록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자유주의 경제관이 전제되어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자유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능률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 나라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경제학 이론을 정립하였다. 이들은 정부의 개입이나 규제는 잠재적인 경쟁자의 진입을 제한하여 경쟁의 압력을 감소시킨다는 이유에서 경제에 해로운 것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자유주의 경제관을 한 단계 더 나아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시장에 확산 적용한 것이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토양을 세계적으로 확산한 것은 구체적으로는 IMF, 세계은행 그리고 WTO, OECD 같은 국제기구들이었다(「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도서출판 부키, 30쪽 참조).

우리나라도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관리 사태에 놓였을 때, IMF는 210억 달러의 외환을 지원하며 자유시장주의 원칙에 입각한 금융개혁, 예산긴축, 정리해고, 시장개방을 요구하였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금융개혁을 단행하여 은행의 BIS 비율을 8%까지 높이고 이자율을 30%까지 높여 외국 자본의 유입을 유도하고 시장을 활성화하도록 종용하였다. 그 덕분에 외국 자본이 들어와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이념에 세뇌되었다.

나 자신도 오랫동안 막연히 경제는 시장논리에 맡기는 것이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경제란 생물 같아서 정부가 함부로 규제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시장만 확보해 주면 그 다음엔 시장 스스로가 자가발전과 경기의 회복 능력을 갖는다는 개인적인 믿음을 유지하였다. 나도 모르게 신자유주의 이념에 세뇌된 채 살았던 것이다. 소련과 동구권 같은 국가 주도의 사회주의경제가 모두 파탄 나는 것을 보고 그런 이론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2008년 세계 자유시장경제의 중심이라고 일컬어지던 뉴욕 월가의 ‘리먼 브라더스’ 등의 투자은행 파산 사태를 보면서 나의 자유시장에 대한 소박한 믿음과 기대는 실제로 근거가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이런 금융위기를 가져온 배경에는 금융공학 기법을 이용하여 세계의 금융자산 시장에 엄청난 투기성 자산의 거품을 일으키고 그 과실을 탐닉한 투자가들의 부도덕과 탐욕이 작용하였음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시장이란 결코 무작정 신뢰할 대상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시장은 재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중립적인 현장이 아니고 인간의 욕심과 의지, 개입과 통제 등 다양한 인위적인 요인으로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변화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운용의 경과
GATT에서 WTO로 그리고 다시 FTA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흐름은 한국 경제의 판도에도 큰 변화를 일으켜왔다. 이미 1980년대 말부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갈수록 교역 규모가 커지는 한국의 OECD 가입을 촉구해 왔지만, 한국 정부는 시장개방 압력이 더 커질 것을 두려워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무역 갈등이 커지자, 한국 정부는 1990년대 초 세계경제질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OECD 가입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한국의 OECD 가입은 국내에서는 큰 논쟁거리였다. OECD 국가들은 한국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고, 로버트 코넬 OECD 사무차장과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 등은 OECD 가입을 통해서 한국 경제가 더 성장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였지만, 국내의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OECD 가입은 OECD의 경제 제도와 규칙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하며, 많은 제도의 변화와 정부의 각종 규제 철폐와 완화를 전제로 한다. 자본시장 자유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서비스 시장에 대한 규제도 바뀌어야 했다. OECD 가입 작업이 본격화한 김영삼 정부 초기부터 대다수 경제전문가들과 정치권에서는 3대 불가론을 제기하고 있었다.

첫째, OECD에 가입하면 국내 금융·자본시장이 개방돼 국제 투기자본이 유입, 환율과 금리를 급격히 변동시켜 국내 금융시장이 붕괴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둘째, OECD 가입은 개발도상국임을 부인하고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특혜관세(GSP) 등의 혜택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돼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셋째, 정부가 OECD 가입을 공식 추진할 경우 국민들에게 선진국 환상을 심어놓아, 소비를 조장하고 사회분위기를 느슨하게 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WTO가 출범한 1995년 김영삼 정권은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 서둘러 동승하겠다는 욕심으로 ‘세계화’의 기치를 높이 들며 파리에 OECD 가입 준비사무소를 열었고, 이듬해인 1996년 12월 OECD 가입을 확정하며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였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OECD 가입이 성사된 바로 이듬해 한국 경제는 위에서 언급된 경제전문가들의 경고가 그대로 현실로 바뀌었고, 국제투기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하루아침에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했으며, IMF에 굴욕적인 외환지원을 긴급히 요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IMF는 우리에게 외환을 지원해 주는 대신 우리의 경제구조를 그들이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구조조정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우리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IMF는 국제수지가 위기 상황에 놓인 나라들이 디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국제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또 공식 명칭이 ‘재건과 발전을 위한 국제은행’인 세계은행은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 국가들의 재건과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들의 경제 발전을 돕고자 설립되었다. 곧 세계은행은 (도로나 다리, 댐과 같은) 사회기반 시설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제공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재건과 발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하지만 제3세계 외채위기가 있었던 1982년 이후 IMF와 세계은행은 이른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정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사회기본시설 개발의 지원이라는 본래 임무에서 훨씬 벗어나 정부 예산, 산업 규제, 농산물 가격, 노동시장 규제, 민영화 등 개발도상국들의 거의 모든 경제 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들어 IMF와 세계은행은 차관 제공에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차관을 받는 나라의 민주주의, 정부의 분권화, 중앙은행의 독립은 물론 기업의 지배 구조와 같은 사회 제반 영역에까지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IMF의 경우 처음에는 통화 평가절하 등 채무국의 국제수지 관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항만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차츰 예산 적자가 국제수지 불안의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근거에서 정부 예산과 관련한 조건을 내걸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국영기업에서 발생한 손실이 예산 적자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근거에서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같은 조건까지 내걸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거론되고 또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공기업의 민영화가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관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최근 KTX, 인천국제공항 등의 민영화를 거론하는 이들도 바로 이런 신자유주의 경제관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IMF와 세계은행은 그 도움을 받는 제3세계 개발도상국에 신자유주의 경제관을 전도하고 강요하고 있지만, IMF와 세계은행의 제일 큰 지분을 가진 미국은 본디 신자유주의 경제관보다는 보호무역 정책의 혜택을 받고 성장한 나라다. 미국은 필요하면 언제든 관세 외의 다른 보호주의 정책을 서슴없이 사용하였다. 자유무역주의를 강화한 뒤에도 미국 정부는 연구개발 지원과 같은 또다른 수단으로 핵심 산업을 장려했다. 195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은 전체 연구개발 비용의 50-70%를 차지했다. 이 같은 연방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없었더라면 미국은 컴퓨터, 반도체, 생명과학, 인터넷, 항공우주과학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주도자들은 한국도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비약적인 경제 기적을 이루는 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 전략이 한몫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 동안 민간 부문과의 협의 아래 특정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 관세나 보조금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 지원을 통해 그 산업이 국제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하도록 육성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실질적으로 모든 은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의 생명줄인 대출까지 관리할 수 있었다. 일부 대형 사업은 국영 기업에 의해 직접 추진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제철회사인 포스코였다. 한국 정부는 그와 함께 부족한 외환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했다. 한국의 경제 기적은 시장 인센티브와 국가 관리의 실용적인 조합이 절묘하게 빚어낸 결과이다(「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32-33쪽 참조).

4. FTA의 사례와 징후

멕시코
미국은 WTO 체제로는 회원국 전원이 합의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교역 활성화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자, 소수 국가 사이의 양자 간 협정인 FTA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하고 제일 먼저 북미주의 FTA, 곧 멕시코와 캐나다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다. 멕시코의 경우 나프타(NAFTA) 발효 이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의 직접투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한미FTA를 맺으려 할 때 우리나라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일 앞에 내세운 논리가 세계 제1의 시장인 미국에 우리 기업들이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멕시코의 경우도 바로 그런 의도로 FTA에 접근하였다. 미국과 FTA를 맺음으로써 멕시코의 수출 규모는 나프타 직전인 1993년 518달러에서 2005년에는 2,127달러로 4배 증가했다. 나프타 발효 후 관세감축 등의 효과로 멕시코와 미국의 상품교역은 약 186% 증가했으며, 특히 수출증가율이 수입증가율을 웃돌아 대미 무역수지가 1993년 20억 달러 적자에서 2005년 650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외국인 직접투자 역시 1993년 44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2004년 166억 달러, 2005년 178억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대폭 증가했다. 외환보유고도 687억 달러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외형적으로 수출과 투자가 증가하는데도 멕시코의 노동자, 농민의 생활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심각한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의 증가, 저성장, 이농현상, 초국적 기업의 지배력 강화, 불법이민의 증가, 마약밀수 등 심각한 폐해가 드러났다. 나프타 발표 이전보다 4배 이상 증가한 전체 수출에서 미국시장 비중이 85-90%를 차지하였고, 수입품의 85%는 미국에서 들어왔다. 곧 멕시코는 미국시장을 위한 노동집약 생산기지로 변한 것이었다. 멕시코 기업은 수출 1위부터 6위까지 국영석유회사 하나밖에 없고 다 미국계 기업이었다. 미국 기업들이 자기네 부품을 타지역에서 멕시코로 수입하여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하고 수출이란 이름으로 가져갔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대미 무역수지 흑자 650억 달러는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의 초국적 기업이 가져간 것이기 때문에, 이는 멕시코가 초국적 기업들의 글로벌 생산기지로 변모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나프타 이후 멕시코 노동자들의 평균 실질임금은 낮아졌다. 나프타 발효 후 2005년 말까지 멕시코 제조업의 평균 노동생산성은 68%나 증가했는데도 노동비용은 31% 감소했다. 기업의 이윤은 크게 늘었지만 노동자 몫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멕시코 중앙은행이 집계한 연도별 1인당 GDP 증가율을 보면, 1994년 이후 2005년까지 연평균 1.43% 성장에 그쳤다. OECD 평균 GDP를 100으로 봤을 때는 1990년에 37.7에서 2002년 35.7로 오히려 하락했다. 중요한 것은 경제는 성장했지만 멕시코의 고질적인 빈부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노동자, 농민의 생활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저성장의 원인은 나프타 이후 멕시코 내부의 산업연관 체계가 무너진 데 있다. 대기업과 외국 기업들의 수출이 성장을 이끌고 있지만, 이들은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만 활용할 뿐 대부분의 원·부자재와 부품을 중국 등 멕시코 이외 지역에서 들여온다. 나프타 이후 멕시코의 내수제조업, 중소기업, 농업 등에서 대규모 도산사태가 이어지는 동안 무역의 대미의존도는 85-90%로 치솟고 금융업의 90% 이상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실제로 멕시코 정부는 나프타 발효 후 2002년까지 50여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농업부문에서 1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이 기간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 도시 자영업, 농민 등 개방에 취약한 계층들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 경제의 침체로 제조업의 고용창출 능력도 떨어졌다. 멕시코 정부의 공식통계로도 2005년도 신규취업자 10명 가운데 7명이 비정규직이다. 절대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인구도 전체의 31%에 이른다. 멕시코의 경우 나프타는 외형적으로 경제수치로는 성장을 가져왔지만, 그 수치는 속 빈 강정이었고 국민의 삶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뜨린 셈이다(「한미FTA국민보고서」 “한미FTA와 NAFTA”, 배성인 저, 693-700쪽 참조).

캐나다
캐나다는 나프타 체결 전인 1989년에 이미 미국과 쿠프타(CUFTA)를 체결했다. 이 쿠프타 이후 캐나다 산업전반이 구조조정 되면서 비정규직과 비공식노동이 꾸준히 증가했고, 실업률은 7.8%에서 11%로 증가했다. 사회복지 지출은 1993년에는 21.6%였다가 2001년에는 17.8%로 떨어졌다. 쿠프타 발효 후 캐나다 정부는 실업급여, 노후연금, 의료와 교육 재정을 대폭 삭감했다.

캐나다 농가부채는 1989년 225억 달러에서 2001년 442억 달러로 증가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1988년 이후 2002년까지 5만 명의 캐나다 농부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향을 등졌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쿠프타와 나프타가 발효되면서 11%의 가족농이 농업을 포기했다. 그리고 사스카츈, 알버타, 매니토바풀스, 곡류생산자연합 등 캐나다의 네 개 주요 협동조합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아처다니엘스가 높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아그리코어유나이티드로 통합 합병되었다. 사스카츈휘트풀과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카길이 서부지역 곡물의 75%를 통제하고 있고 아처다니엘스는 캐나다 밀가루 제조시설의 50%에 달하는 지배권을 갖고 있다. 콘아그라는 캐나다 맥아제분 공장의 64%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카길과 육류포자업체인 IBP는 전체 캐나다 육류포장 공장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다(「한미FTA국민보고서」 “한미FTA와 NAFTA”, 배성인 저, 705-706쪽 참조).

볼리비아
볼리비아는 외채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IMF는 1999년, 1억3천8백만 달러의 융자를 결정하고 그 대신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 그 가운데 공기업을 매각하라는 내용이 있었고, 여기에는 코차밤바 지역의 상하수도 시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 같은 해 세계은행은 볼리비아가 구조개혁을 완수하려면 확실한 재정지출 삭감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코차밤바 상하수도 시설에 대한 일체의 보조금을 없애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엄청난 압력 속에 볼리비아 정부는 결국 코차밤바의 상하수도 시설을 매각하기로 하고 입찰을 개시하였다. 이 입찰에 뛰어든 회사는 ‘아구아스 델 투나리’ 하나뿐이었고, 결국 2만 달러도 채 안 되는 헐값에 상하수도 시설권이 이 회사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 ‘아구아스 델 투나리’라는 회사는 벡텔이 100% 소유한 자회사인 IWL(International Water Limited)이 55%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벡텔의 손자회사라고 할 수 있었다.

벡텔은 상하수도 시설 운영권을 따낸 지 단 1주일 만에 수돗물 가격을 급격하게 인상하였다. 당시 볼리비아의 최저 임금은 월 70달러 정도였는데, 한 달 물값이 20달러를 넘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해 2000년 2월 상하수도 사유화를 취소하고 벡텔의 시설 운영권을 빼앗을 것을 요구하는 대중봉기가 일어나 시내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175명이 다치고 2명의 아이를 포함해서 6명이 사망하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4월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하였다. 4월 10일 볼리비아 정부는 민중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서약하였다. 벡텔도 상하수도 운영권을 빼앗기고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이에 벡텔은 1992년 네덜란드와 볼리비아가 맺은 양자 간 투자협정의 ISD(투자자-국가직접소송제)를 근거로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로 가서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2,6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였다. 벡텔과 그 자회사가 볼리비아에 지출한 내용은 100만 달러가 채 안 된다. 그런데 2,600만 달러라는 배상청구액은 터무니없는 액수다. 상하수도 운영권을 통한 미래 예상수익을 근거로 추정한 ‘자산가치’를 토대로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투자자-국가직접소송제」, 홍기빈 지음, 녹색평론사, 118-121쪽 참조).

미국
미국에서는 나프타 체결 이후 10년 동안 전체 3백만 개의 제조업 일자리 중 6분의 1이 사라졌다. 높은 임금과 연금을 받던 제조업 노동자들이 예전에 받던 임금보다 23-77% 줄어든 새로운 일자리를 서비스 부문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일자리에서는 연금이 거의 없었다. 나프타는 미국인의 75%를 차지하는 대학졸업 미만의 인구가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에 변화를 줌으로써 수백만 미국 가계의 경제적인 안정을 파괴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이미 2000년까지 나프타로 인해 미국에 있던 76만 6천 개의 일자리와 고용기회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나프타 발효 이후 생산시설을 멕시코로 이전하기가 쉬워지면서,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연금 인상 요구에 대해 생산시설 이전을 협박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노동자들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려고 할 때 이런 위협은 더욱 심해졌다. 코넬대학교의 한 연구에서 400개의 노동조합 인정 캠페인을 조사했는데, 이동 가능한 산업(제조업, 통신업, 도매/유통 등)의 사업장 중 68%에서 공장 이전 협박이 있었다.

농민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연구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2년 사이에 미국에서는 38,310개의 농가가 사라졌고, 2000-2005년 동안 남아 있는 농가의 76%가 가계적자를 면치 못했다. 다시 말해 나프타가 잘 알려진 대로 멕시코 경제에 궤멸적 타격을 입혔을 뿐 아니라 미국 노동자와 농민들에게도 그에 필적하는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재앙’의 맞은편에는 반대급부를 챙기는 부류가 있게 마련이다. 소규모 농민들이 땅에서 손을 떼는 대신 소수의 거대기업농이 세계적으로 사상 최대의 시장점유율을 장악했다. 미국의 상위 3개 기업인 카길, 아처대니얼스, 젠노는 미국 옥수수의 80% 이상을 수출했다. (이는 1990년보다 9% 올라간 것이다.) 4위권 안에 드는 닭 관련 기업이 미국 가공생산시장의 절반 이상을 장악했고, 타이슨푸드는 육류포장업체인 비프아메리카와 합병해 소, 돼지, 닭 생산 관련 세계 최대기업이 되었다. 또한 무역자유화로 대학학위가 없는 미국 노동자들이 12.2%의 임금손실을 입은 사이에 미국기업의 이윤은 1990년대에만 88% 상승했고, CEO의 보수는 463% 상승했다(「한미FTA국민보고서」 “한미FTA와 NAFTA”, 배성인 저, 706-708쪽 참조).

FTA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하려던 미국에서조차 이렇듯 극소수의 자본가들은 엄청난 고수익을 누리는 반면, 중산층이 무너지고 생활보호 대상자가 급증하며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하여 1%를 위한 경제구조는 바뀌어야 함을 부르짖는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시장의 모든 규제와 장벽의 철폐는 얼핏 듣기에는 가장 자연스러운 경제구조인 것 같지만, 실상은 경제의 건전한 균형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성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최첨단 업종인 금융업이 이룩한 최근의 행태(금융업이 전통적인 여신 관리에 머물기보다는 파생상품 등을 통한 자본의 투기적 운용으로 금융시장을 교란, 왜곡하여 단기간에 거액의 수익을 올리고는 뒤로 빠지는 행태)는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세계의 경제 건전성을 뿌리째 흔들어버릴 수 있는지를 여실히 입증해 주었다.

5. 한미FTA가 발효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국 정부는 이미 FTA를 추진하기 오래전부터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기반하여 ‘자발적 자유화 조치’라고 일컬어지는 국내법에 의한 자유화, 시장화를 추진해 왔다. 이것은 IMF 관리 사태에 들어간 상황에서 IMF가 강력히 요구한 구조조정의 방편이었다. 그 이후 공기업의 민영화가 꾸준히 추진되었다.

공기업 민영화
초국적 자본은 물 산업 진출에 혈안이 되어있고, 세계 곳곳에서 물을 사유화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이미 전국 167개 지자체가 운영하던 상수도 사업을 수자원공사에 넘기는 형태(민간위탁)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논산, 사천, 예천, 정읍 등에서 민간위탁이 실시되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공기업이기 때문에 민간위탁은 사유화가 아니라는 논리가 있다. 그러나 FTA 논리상 아무리 공기업이라 하더라도 사기업과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순간 더 이상 국가가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내국민대우 원칙 적용대상이 되면서 전면적인 사유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모든 공기업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걷게 된다.

물 산업 전반에서 상수도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수도, 공업용수 처리, 건축과 토목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미 국내 물 산업에는 사적-초국적 자본이 진출해 있다. 1997년 하수도 분야 민영화 실시 이후 전체 하수 처리장의 57%(207개소 중 118개소)를 사적 자본이 운영하고 있다.

물 사유화의 사례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수도가 사유화되고 초국적기업에 넘어가면서 수도요금이 2001년에서 2004년 사이 연평균 35% 상승했다. 사유화 당시 노동자 1천여 명이 정리해고되었다.
- 우루과이: 2000년부터 물 사유화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수도요금이 10배 폭등했고 수질은 악화되었다. 기업의 방만한 운영으로 발생한 손실을 세금으로 메워야 했다.
- 볼리비아: 코차밤바 지역의 물을 사유화하고 초국적기업에 넘긴 이후 수도값이 30배 폭등했다. 지역주민들의 투쟁으로 초국적 기업이 쫓겨나고 지역사회가 공동 운영하는 수도체계로 복귀했으나 볼리비아 정부는 추후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2,6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당했다.
- 남아공: 1994년부터 지자체에 대한 보조금을 축소하고 사유화가 시작되었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요금이 600% 인상되고 천만 명 이상에 대한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한미FTA국민보고서」 "한미FTA와 공공·행정서비스 시장화", 박형모.전소희 저, 216-219쪽 참조)

이렇게 수도, 가스, 전기 등 국민의 삶과 밀접한 사회공공성의 영역은 현재 매각 또는 시장개방 중에 있으며, 오히려 세련된 방식으로 사적 자본의 잠입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있는 상황이다. 가스, 수도, 전기를 팔지 않는다는 정부의 말은 진실이 아니며, 한미FTA는 자발적 개방을 이미 시작한 공공서비스 산업의 완전 개방을 촉구하는 형태로 조용히 추진되고 있다(「한미FTA국민보고서」“한미FTA와 공공서비스”, 송유나 저, 248-249쪽 참조).

전력산업의 사례
1999년 전력산업 사유화의 일환으로 안양, 부천 열병합 발전소가 매각되고 나서 해당 주민들은 30-40%의 급격한 요금인상을 경험해야 했다. SK가 소유하고 있는 포항도시가스는 민영화 이후 요금이 12% 급등했다.

전력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본격화된 2000년 이후 미국에서는 전력가격의 급등과 정전사태가 빈발했다. 대규모 정전사태 발생으로 급기야 5월 22일 캘리포니아는 긴급사태를 선포했으나 이미 10만에 이르는 사람들은 전력공급 중단사태에 놓여있었다. 사고가 지속되면서 전력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2000년 6월 11-15일, 5일 동안 샌디에고 지역의 소매 전기요금이 무려 270% 상승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2001년 1월 중순, 사태는 더욱 심각해져서 18일에는 실리콘밸리의 중심지인 새너제이, 프리몬트,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등에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비상국면은 2주나 지속되었다. 당시 도매 요금은 약 10배나 인상되었고, 피크타임에는 무려 30배까지 급등했다. 2003년 8월에도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캐나다의 온타리오, 토론토에서도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민영화를 통하여 전력의 안정적 공급 구조가 해체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력이 생산되어 일반 가정에 공급되려면 발전-송변전-배전이라는 시스템을 거친다. 발전소에서는 전력을 생산하고, 송변전은 생산된 전기의 전압을 바꾸어 지역으로 송전한다. 그리고 배전은 해당 지역과 가정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해 한국 정부는 분할매각 방식을 택했고, 배전분할이 중단됐지만, 발전은 화력 5개사와 원자력 1개사로 나누어졌다. 그런데 네트워크 산업의 계통은 통합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야만 안정적이다.

현재 한국의 전력공급 구조는 발전 분할만으로도 전력산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오로지 팔기 쉽게 분할한 현 시스템은 유기적으로 연계됐던 수직-통합적 시스템을 점차적으로 붕괴시키면서, 발전사가 허구적인 경쟁구도를 창출했다. 전력산업에서 나타나는 작은 사고가 커다란 광역정전, 이른바 블랙다운 사태로 급속히 퍼질 수 있다는 점은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발전-송전-배전 체계가 연관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장사태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고장의 원인 자체가 복합적이어서 책임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그러나 통합체계가 깨지고 계통 운영의 연계가 무너진 상황에서 이제는 사고가 생기면 수십억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과 책임공방에 따르는 결과를 두려워해, 사고를 먼저 수습하기보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발전회사에는 계획예방정비라는 것이 있다. 2-3년에 한 번씩 기계를 다 뜯어보고 고치고 점검하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생산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발전회사를 5개로 쪼개 서로 경쟁을 하라고 하니 운영비용을 최소화시키려고 가장 중요한 유지, 보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50일 동안 해야 할 계획예방정비를 비용을 줄이려고 30일로 줄이고, 2년에 한 번 할 것을 3-4년에 한 번 하여 비용을 줄인다. 결국 이 과정에서 대규모 정전사태(2006년 제주도와 여수의 사례)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한여름, 한겨울 소비자들이 전기를 많이 쓸 때 비슷한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한미FTA국민보고서」 “한미FTA와 공공서비스”, 송유나 저, 253-256쪽 참조).

6. 국제통상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주교단의 가르침

2008년 2월 멕시코 주교단의 나프타(NAFTA)에 대한 성명
멕시코 주교들에 따르면 나프타 협정하의 농산물 농업 관세 철폐는 멕시코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농민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에 놓여있다. 농민들은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내몰리거나, 미국 국경을 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농부들은 불법마약의 원료가 되는 농작물을 생산하는 유혹에 직면해 있고 이는 폭력과 범죄를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주교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세상의 어떤 시스템도 죽음을 초래하는 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결코 전례거행이나 형식적인 설교의 틀 안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기적인 안락함과 수동적 자세에 머무르기를 용납하지 않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나서도록 촉구한다.”

캐나다 주교단
나프타를 맺은 지 8년 되는 해에 캐나다 주교들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캐나다에서는 공해산업의 피해에서 자국의 환경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미국의 투자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였고, 미국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소송에서 패배함으로써 벌금을 물거나 캐나다 국내의 환경보호 조치를 해제해야 했다. 결국 나프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권보다 국제기업의 이윤을 우선하고 국가의 미래 환경을 팔아넘긴 셈이라고 캐나다 주교단은 천명하였다.

미국, 캐나다,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성명
2002년 1월 28-30일에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3개국 가톨릭교회의 대표들은 세계경제, 국제통상, 환경과 노동 전문가들과의 합동회의 후에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은 나프타의 11장에 따르면 국민들의 환경, 건강, 그리고 다른 사회적인 가치를 지켜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 사기업의 이윤과 충돌할 때에 지대한 제약을 받을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2001년 4월 4일 캐나다 주교회의는 퀘벡에서 열린 미주대륙정상회의에 즈음하여 정상들을 향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캐나다의 주교들은 각국 정상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을 전제하는 사회정의에 입각하여 경제의 세계화를 조정하고 국제적인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함을 강조하였다. “경제통합 그 자체가 공동선을 증진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에 다양한 이익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효과도 동반한다. 각 국가의 공식 기구들도 미주 대륙의 국가들 안에 상당수의 국민들이 수입의 큰 차별과 가난을 경험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시민들이 자신의 삶이 갈수록 더 불안하고 불평등한 사회로 바뀌고 있으며, 미래의 행복을 건설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느낀다.”

캐나다 주교단은 미주 대륙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통합 정책이 지닌 부정적인 전망을 심각하게 우려하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르침을 인용하였다.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라고 알려진 체제가 더욱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순전히 경제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이 체제는 수익과 시장 법칙들을 유일한 지침으로 여기며, 개인과 민족에게 마땅히 돌려야 할 존엄과 존중을 해치고 있습니다. 때때로 이 체제는 사회와 정치 영역에서 어떤 태도와 행동들을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여 사회의 약한 구성원들을 소홀히 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공정하지 못할 때가 많은 특정한 정책과 구조들의 희생자인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로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하여 복음에 바탕을 둔 가장 좋은 대응책은 참된 정의를 얻을 목적으로 연대와 평화를 증진하는 것입니다”(「아메리카 교회」, 56항).

캐나다 주교들은 이 성명에서 이렇게 단언하고 있다. “나프타 협약을 통하여 가난한 이들이 그 낙수 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는 오직 신자유주의 이념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음을 많은 이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 길을 계속 달려 내려가기 전에 우리는 나프타를 통하여 대체 누가 득을 보았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북쪽 나라에 본부를 둔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이다. 그들은 어느 국가에도 충성하지 않으며, 시장을 무제한으로 휘저으려고 엄청난 로비를 전개한다. 우리가 사목하는 신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이들이 벌인 일들은 공동선의 원칙에 입각하여 인간들과 생태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황들의 가르침

교회는 예로부터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만 재산권이 누구에게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님을 일찍부터 가르쳐왔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네 것을 가난한 이에게 희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도록 주어진 것을 네가 독점하였기 때문이다. 땅은 모든 사람의 것이지 결코 부자들만의 것은 아니다.” 비오 10세 교황은 사유재산권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쳤다. “사회 경제의 발전으로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는 재화는 모든 사람의 공동선의 증진을 위하여 다수의 개인과 사회 계급들에게 분배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전체 사회의 복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 정의에 관한 이러한 원칙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이윤의 분배에서 배제하는 것을 금한다”(비오 11세, 「사십주년」, 27항).

사유재산권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공동선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지 무제한으로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역대 교황은 거듭 지적하여 왔다. 따라서 자유무역의 자유도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정당성을 지닌다.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은 이미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개발도상국은 농산물이나 원자재를 생산하는 초보적인 산업 수준에 머물고 있어 국제통상에서 양자가 아무런 조건 없이 같은 출발점에서 자유경쟁을 펼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것은 마치 100미터를 달리는데 대학생과 유치원생을 함께 달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제교역에서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선진국과 동등한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불공정 교역이며 국가 간의 빈부격차를 갈수록 격화시키는 길임을 교회는 일찍부터 호소해 왔다.

“고도로 공업화된 국가들은 주로 공산품을 수출하지만 저개발 국가들은 원료나 농산물 외에는 수출할 것이 없다. 공업화된 국가들의 제품은 진보하는 기술의 혜택으로 그 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시장도 쉽게 발견한다. 그와 반대로 저개발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일차 산업의 상품들은 급격한 가격 변동 때문에 공업 제품의 가격 상승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 결과로서 공업화에 뒤떨어진 국가들이 국내의 경제 균형을 유지하고 발전 계획을 실천하려면 수출 진흥만이 유일한 방법인데 큰 난관에 부딪히고 만다. 따라서 빈곤한 민족은 날로 더욱 빈곤해지고 부유한 민족은 날로 더욱 부유해지게 된다”(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57항).

선진국에서도 일찍부터 자기 나라 안에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생산하는 산업분야에는 어느 정도까지 희생을 요구하면서 중농정책을 도입하며 농민들이나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사양산업 종사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활용하여 국가 안의 균형 발전을 이루어왔는데, 이는 한 국가 안에서만이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똑 같은 배려가 이루어져야 함을 교회는 호소해 왔다(「민족들의 발전」, 60항). 

바오로 6세 교황은 1967년에 이미 국제교역에서의 경제정의에 관한 주의를 환기시키며 선진국들의 부의 독점과 편중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그 시대는 FTA가 아직 거론되지도 않은 시기였지만, 국가 간의 통상 현실에는 이미 오늘날의 FTA가 초래하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경제와 국제 경제에서) 두 가지 저울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국내 경제에 대해서 지키고 선진국가들 간에서 허용되는 동일한 거래 원칙이 선진국 대 후진국 사이의 통상 관계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경쟁 시장을 아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공정하고 도의적인, 따라서 인간다운 것이 되게 하는 방법으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들 사이의 통상 관계에서는 조건이 너무나 다르고 능력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인간적이고 도의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 사회 정의가 요구하는 바는 국제 무역에서 경쟁자들에게 적어도 어느 정도 공정하고 평등한 이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민족들의 발전」, 61항).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세계화의 조류에 편승한 신자유주의 경제가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부의 편중과 불평등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세계의 부가 절대 수치에서 증가하고 있지만 불평등도 증대하고 있습니다. 잘사는 나라들에서는 새로운 사회계층이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고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빈곤 지역에 사는 일부 집단은, 지속되고 있는 비인간적인 박탈 현상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대비되는 낭비적이고 소비 중심적인 일종의 ‘초발전’을 누리고 있습니다. ‘부당하고 원망스러운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진리 안의 사랑」, 22항).

교회는 시장에서의 투자가 언제나 경제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가르쳐왔다(「백주년」, 36항). 국가 간의 투자도 마찬가지여서 선진국의 잉여자본이 개발도상국에 투자될 때에는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도덕적인 원칙이 지켜져야 함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자본이 형성된 방식과 자본이 생성된 곳에서 사용되지 않을 때 개인들에게 미칠 피해를 마땅히 고려하여, 정의의 요건이 지켜져야 합니다. 오직 단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굴복하여, 기업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과 실물경제에 주는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또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활동을 적절하고 합당한 방식으로 증진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투기적으로 금융 자원을 지원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진리 안의 사랑」, 40항).

“세계화는 선험적으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사회학술원에서 한 연설, 2001.4.27.). “우리는 세계화의 희생양이 아니라 세계화의 주역이 되어 사랑과 진리의 인도를 받아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 세계화 과정은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부를 재분배할 수 있는 유례없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면 빈곤과 불평등을 증대시킬 수 있고 심지어 전 세계적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습니다. 민족들 사이에 그리고 민족들 내부에 새로운 분열을 야기하는 일부 심각한 역기능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부의 재분배가 빈곤의 재분배나 증대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 상황을 잘못 다룰 경우, 실질적인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진리 안의 사랑」, 42항).

세계화 현상과 함께 전 세계의 경제를 주름잡아 온 신자유주의 경제관은 국제무역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모든 종류의 관세 장벽과 규제의 철폐를 압박하며 시장자유화를 추진해 왔고, 오늘날 우리 정부가 각국과 맺으려고 하는 FTA는 그러한 시장자유화의 최종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국제통상전문가들은 FTA를 맺음으로써 서로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FTA를 맺은 대부분의 나라가 외형상의 경제규모는 커졌을지 몰라도 극소수의 대기업과 자본가들만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무한경쟁의 구도 안에서 안정된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국민의 과반수가 임시직과 비정규직에 종사하여 최저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한 복지 혜택도 못 받고, 최저생계비를 버는 것도 힘든 가혹한 빈곤을 강요당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오늘의 현실을 관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복음이 명하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과 모든 사회활동에서 최종적인 기준으로 공동선을 가르쳐온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전통을 고려한다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FTA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할지 자명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테아   12-02-24 13:29
참으로 귀중한 글입니다. 여러군데 퍼 나릅니다.
요안나   12-02-24 14:11
전문적이면서 저처럼 경제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신 주교님의 메시지입니다.

참 많이 모르고 살고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테아님이 퍼다 주신 글도 잘 읽었습니다.

함께 공부합시다.^^
천국의졦   12-02-27 06:23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하늘나라에서의 삶은 생각도 하지 않고 지금의 내 삶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최후의 심판 자리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나는 과연 주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지…….
나 편한 대로만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세요.
박요한   12-04-03 06:51
천주교 원로신부의 양심선언! "강정마을 미사는 정치쇼"
"무생물인 구럼비 바위가 '人命 존엄성'보다 우위에 있지 않아"
"마귀는 분열을 일으키고 성령은 일치를 이룬다"
"대한민국의 안보, 현세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양보할 수 없다"
"한국 천주교, 차라리 북한 인권문제와 탈북자 위해 기도하라!"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소서!"

 일부 천주교 사제(司祭)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대해 천주교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와 주목된다.
 인터넷신문 코나스(KONAS)는 "김계춘 도미니코 원로 신부가 국책사업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천주교에 곧은 소리를 냈다"며 점차 '정치세력화' 하는 일부 사제들의 망동(妄動)을 꾸짖은 노(老)신부의 '양심선언문' 전문을 공개했다.

▲김계춘 도미니코 신부 [사진=코나스] 김계춘 신부는 <천주교 나라사랑 기도모임>을 이끌고 있는 원로신부로, 지난해 <정의구현사제단>의 용퇴를 촉구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던 인물.

 이 글(강정마을과 미사에 대한 양심선언)에서 김 신부는 "무생물인 구럼비 바위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며 자연 보호를 앞세워 공사 반대를 주장하는 사제들의 논리는 카톨릭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만물의 영장으로서 창조주의 뜻대로 만물의 가치 위에 있으며, 자연물 때문에 사람이 희생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생명체인 동·식물을 섭취할 권한을 갖는다.
 반대로 각종 동·식물을 살리기 위해 사람이 죽을 수는 없다. 하물며 무생물인 구럼비 바위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다.」

■ "천주교 사회교리 빗대 '정치 노름' 개입말라"
김 신부는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천주교 '사회교리'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언 일부를 인용했다.
"자연을 절대화하고 인간자신의 존엄 위에 두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지나치면 자연이나 대지를 신격화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사회교리 347P 463장)."
"일부 환경 운동단체들이 생물권을 차별 없는 가치를 지닌 생물 통합체로 간주하여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가치론적인 차이를 없애자는 제안이 이루어지고 있다. 천주교 사회교리는 자연생물을 인간과 동등시하는 사상을 배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위해서는 자연법 거역이 아니라 고차원적으로 자연법을 신용할 수 있는 것이다(요한 바오로 2세, 환경과 건강 영어판 1997. 4.9. 2면)."

▲천주교 전주교구장인 이병호 주교가 지난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해안에서 '생명·평화 기원 미사'를 봉헌한 뒤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눠주고 있다.
 또 김 신부는 "강정마을에서의 미사는 미사의 존엄성을 망가뜨리는 행위"라며 최근 '생명평화미사'라는 미명(美名) 하에 제주도에서 열리는 미사가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지적했다.
「결혼식이나 장례시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 신자 아닌 사람들도 그 깊은 뜻을 모르지만 누구나 엄숙하고 은혜로움을 느낀다.
 강정마을에서의 미사를 보는 사람들은 과연 성스러움을 느낄 것인가? 안타까워하거나 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미사의 존엄성을 망가뜨리는 행위이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마라 하였다.
차라리 그 용기와 열정으로 세계적인 명산 금강산의 이곳 저곳을 훼손하고 군사기지 요새화로 막대한 자연파괴와 핵폭탄 제조로 평화를 파괴하는 심장부 길일성 궁전에서 전쟁을 막는 평화미사가 드려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지난해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의례회관에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가 출범한 가운데 총회에 참석했던 신부와 신도들이 강정포구에서 미사를 보고 있다.
 김 신부는 "천주교 사회교리를 빗대 시류를 타는 정치 노름에 개입하지 말라"며 일부 사제들을 겨냥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도 전했다.

「제주 해군기지 사건은 노무현 정부시절에 합법적으로 이미 결정났고, 법적 조치가 끝났는데도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요즈음 갑자기 선거철을 이용하여 한국천주교 공동체가 분열되는 마수에 속아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마귀는 분열을 일으키고 성령은 일치를 이룬다.」

끝으로 김 신부는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신부들이 더 시급한 북한 인권 문제나 탈북자 생명구출에는 왜 기도를 올리지 않느냐"며 "일부 사제들의 이분법적 행위로 인해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성당을 이탈하고 있다. 천주교가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조장하는 종교로 변해 버릴까 염려된다"고 안타까워했다.

■ "천주교 사제는 UN경찰이 아니다"
한편 김 신부는 지난 2010년 7월에도 <뉴데일리>에 기고문을 보내 성직자들의 집단행동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다음은 "천주교회가 왜 4대강에 참견하나" 칼럼 중 일부 발췌
천주교 신부들은 사랑과 정의감이 불타오르고 가족관계로 매인 곳이 없기 때문에 자타가 인정하는 양심의 보루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해야할 것은 사제의 양심이 만사의 진리이거나 모든 사람들이 수용해야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천주교 사제는 남을 속이지는 않지만 속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똑똑한 신부가 누구보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천주교 사제는 사제로 헌신하고 있는 한 모두가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사제이다.
 특정 단체에 속한 사제만이 정의사회 구현에 애쓰고 나머지는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썩은 사제들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천주교 사제는 만능도 아니며 UN경찰도 아니다.
요컨대, 나는 사제들이 정치적으로 시기를 맞춘 듯한 일에 너무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주교회는 교회의 권위인 '무류지권(無謬之權·교황의 가르침은 오류가 없다는 교권주의적인 교리)'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 정진석 추기경 "교내 정치적 발언 자제" 권고

▲정진석 추기경
 김 신부의 지적대로 최근 천주교는 주한미군 철수, 평택 미군기지 반대, 국가 보안법 폐지, 4대강 개발 반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사제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각종 국가안보사업을 훼방하는데 천주교가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천주교 전체가 '국책 사업'에 개입,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니다. 일부 사제들이 4대강 사업 등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앙칼진 목소리를 내면서 마치 천주교 자체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
 이와 관련, 정진석 추기경은 2010년 "4대강 사업은 과학적 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종교계가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며 천주교 내 일부세력을 겨냥, '정치적 현안' 개입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 추기경의 발언 직후, 특정 사제단은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고 추기경을 맹비난한 뒤 '정진석 추기경의 용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파문을 일으켰다.
 이들 사제단이 바로 그 유명한 <정의구현사제단>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74년 9월 26일에 창립된 전국 사제(주교·신부)들의 초교구적 자발적 모임으로, 1974년 7월 23일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 무효'라는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체포돼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뒤, 젊은 가톨릭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같은 해 9월 26일 강원도 원주에서 결성됐다.
 조직은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지는 않으며, 회원수도 일정하지 않다. 다만 전국의 사제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활동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문규현 신부를 파견,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을 빚은 <정의구현사제단>은 2005년 경기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미사를 드리고, 2008년 정부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동과 관련해 국가권력의 회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회적 현안이 대두될 때마다 시국미사를 개최, 일종의 '종교 시위'를 벌여왔다.
 <정의구현사제단>이 해가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심지어 추기경의 교도권마저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2008년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에 취임한 것과 무관치 않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우측) 주교가 지난달 24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2호 법정에 들어가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다 기소된 신부와 성직자들의 선고 공판 과정을 지켜보고 나온 뒤 문정현 신부를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강우일, 이용훈 주교가 '천주교 좌파운동' 핵심
 강 주교는 주교회의 의장 자리에 오른 뒤 4대강 사업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해군기지 건설 반대 등을 천주교 사회교리로 내세웠다.
 강 주교와 더불어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수원교구장) 주교도 천주교 내 대표적 '정치적 강성' 신부로 꼽힌다.
 이 주교가 교구장인 수원교구는 지난달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만화를 성당에 배포했다. 특히 이 만화를 보고 이의를 제기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모 신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천주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갖가지 미사와 거리행진은 사실상 이 두 사람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게 교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주교 중심체제인 천주교는 각 교구의 주교가 최종 집행권을 갖고 있으며 주교회의 결정을 항시 전 교구가 이행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이용훈(우측) 위원장이 지난해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말질사거리에서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중덕삼거리를 찾아 제주교구 고병수 신부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이용훈 위원장은 수원교구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주교 차원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성명을 낭독하고 미사를 드리는 행위는 제 3자가 바라볼 때 한국천주교회 전체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정진석 추기경도 바로 이 점을 우려해 "정의평화위원회의 '4대강 반대' 입장 표명이 천주교 전체의 뜻은 아니"라며 명확히 선을 긋는 발언을 한 것이다.
 하지만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과, 산하 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 나섰다는 사실 만으로도 한국 천주교가 상당 부문 '정치화' 됐다는 비난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쓴소리도 있다.
 한 교계 관계자는 "사제단 차원이 아니라 '주교 차원'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제주도 강정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 천주교가 국가 기간산업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셈"이라며 "천주교의 위상과 중립성을 훼손하고 있는 이들의 작태를 대체 언제까지 두고봐야 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주교의 말만 믿고 여기저기 생명미사에 끌려다니는 분들도 계시지만,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지 않는 게 신앙적으로 위배되는 일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고 말했다.

[강정마을과 미사에 대한 양심선언]
1. 지극히 성스러운 미사 봉헌은 환경이 합당한 곳에서 거행되어야 한다.
  제주 강정마을에서의 미사는 작업을 저지하기 위함이라 해도 작업차량    을 막지 못하면서 그렇게 위험하고 소란스럽고 먼지가 나는 곳임을 알    면서도 불경스럽게 미사를 드려도 됩니까?
  작업자들의 말대로 좀 떨어진 곳에서 미사를 드릴수도 있고, 성당에서      드려도 숨은 데서 보시는 하느님께 경건하게 드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건드리면 종교박해를 핑계삼아 문제를 일으키는 태도는 신성한 천주교    미사 행위답지 않다.
2. 미사는 누가 봐도 감동을 주는 신성한 종교행위가 되어야 한다.
  결혼식이나 장례시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 신자 아닌 사람들도 그 깊    은 뜻을 모르지만 누구나 엄숙하고 은혜로움을 느낀다.
  강정마을에서의 미사를 보는 사람들은 과연 성스러움을 느낄 것인가? 안    타까워하거나 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미사의 존엄성을 망    가뜨리는 행위이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마라 하였다.
  차라리 그 용기와 열정으로 세계적인 명산 금강산의 이곳 저곳을 훼손하    고 군사기지 요새화로 막대한 자연파괴와 핵폭탄 제조로 평화를 파괴하    는 심장부 길일성 궁전에서 전쟁을 막는 평화미사가 드려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3. 인간은 자연법을 어길 권한은 없지만 선용할 권한은 있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만물의 영장으로서 창조주의 뜻대로 만물의 가치    위에 있으며, 자연물 때문에 사람이 희생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생명체인 동·식물을 섭취할 권한을 갖는다.
  반대로 각종 동·식물을 살리기 위해 사람이 죽을 수는 없다. 하물며 무    물인 구럼비 바위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다.
4. 한국의 안보는 현세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양보할 수 없다.
  한국 여권으로 전 세계를 다닐 수 있으면서도 동족임을 내세우는 북한    에는 유일하게 못가는 현실속에 아직까지 전쟁의 위협을 받으면서 무력    도발을 겪고 있는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 위하여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    면 무생물인 바위를 뚫어서라도 군사기지를 만들어 모든 사람이 살아남    아야 할 것이다. 평화시의 자연 훼손이 아니지 않느냐?
  어차피 악(惡)이라면 큰 악을 피하고 작은 악을 택하는 것이 천주교의      신앙윤리이다.
천주교 사회 교리서에도 "자연을 절대화하고 인간자신의 존엄 위에 두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지나치면 자연이나 대지를 신격화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사회교리 347P 463장)"
 일부 환경 운동단체들이 하듯이 생물권을 차별 없는 가치를 지닌 생물 통합체로 간주하여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가치론적인 차이를 없애자는 제안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천주교 사회교리는 자연생물을 인간과 동등시하는 사상을 배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위해서는 자연법 거역이 아니라 고차원적으로 자연법을 신 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환경과 건강 영어판 1997. 4.9. 2면)
5. 천주교 사회교리를 빗대어 시류를 타는 정치 노름에 개입하지 마라.
  옛날 한국에는 4대 박해를 통해 103년이란 오랜 세월 수많은 신자들이    죽고 피난하고 신앙생활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당시에 외국인 선교사    가 한국의 제사문제를 잘못 해석하여 조상에게 바치는 효심의 제사를 신    앙교리에 어긋난다 하여 금했다.
  그리하여 당시 사색당파의 정치적 권력투쟁에 이용되었다. 오늘날처럼 천    주교에서 조상제사가 허용된 점을 생각하면 그 당시 시기적으로 백성들    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결과로 그 많은 순교자들을 내었다.
만일 그런 혹독하고 103년간의 장기적인 박해가 없었다면 오늘날 개화한 그 후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신자가 탄생했겠는가?
 제주 해군기지 사건은 노무현 정부시절에 합법적으로 이미 결정났고, 법적 조치가 끝났는데도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요즈음 갑자기 선거철을 이용하여 한국천주교 공동체가 분열되는 마수에 속아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마귀는 분열을 일으키고 성령은 일치를 이룬다.

끝으로 환경문제는 인간 생명문제가 최고 가치이므로 현실적으로 북한 인권문제와 중국주재 탈북자 북송저지 문제가 더 시급한 생명구출 문제인데 이런 기도 행위는 왜 없는가? 천주교 순교자들의 피와 목숨걸고 자유를 지켜낸 전우, 애국자들 덕에 자유로히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 기회에 병역미필자들은 좀 겸손하기 바란다.

지금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일부 천주교회 행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며 양심에 맞지 않는 성당에서의 시국강론 운동 때문에 성당을 이탈하게 만들고 있다. 어느덧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조장하는 종교로 변해 버릴까 염려된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하소서. 아멘!

천주교 나라사랑 기도모임
2012년 3월 26일 주님 탄생예고 대축일에

원로신부 김계춘 도미니코 
■ 출처 : 코나스(http://www.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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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6 [축복해주세요] 7월 27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27 2752
965 [축복해주세요] 7월 26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26 6389
964 [축복해주세요] 7월 25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25 2702
963 [축복해주세요] 7월 24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24 3767
962 [감사해요] 2013년 7월 2일 미리야나를 통해 주신 메주고리 테아 07-23 3816
961 [축복해주세요] 7월 23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23 4705
960 [축복해주세요] 7월 22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22 2773
959 [축복해주세요] 7월 20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20 3261
958 [축복해주세요] 7월 19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19 2462
957 [축복해주세요] 7월 18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18 2311
956 [축복해주세요] 7월 17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17 3739
955 [축복해주세요] 7월 15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15 3167
954 [축복해주세요] 7월 11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11 5530
953 [축복해주세요] 7월 10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10 3834
952 [축복해주세요] 7월 9일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교우님들 축하롦 바오로 07-09 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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