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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2014-09-02 09-02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지금 우리가 해방되어야 할 더러운 영이 무엇인지 성찰해 봅니다. 우리는 각자의 상처와 욕망에서 자라난 병든 영들에 사로잡혀 있을뿐더러 시대 전체를 휘감으며 수많은 사람의 영적 생명을 앗아 가는 악한 기운에도 짓눌려 있습니다. 그러기에 개인의 내적 회심으로 이끄는 기도와 성찰만이 아니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뿌리 깊은 시대의 병든 부분을 식별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 또한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이 바오로 사도가 오늘 독서에서 호소하는, 현세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선물을 제대로 알아보는 영적 삶을 위한 터 잡기입니다. 특히 사회 병리적 현상과 왜곡된 시각들에서 한 개인이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라 근대적 삶의 기나긴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우리는 때때로 예술가들의 예언자적 직관에서 발견하는데, 그 좋은 보기가 19세기 미국의 작가 멜빌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입니다. 이 소설은 ‘근대적 삶의 허무함을 보여 주는 슬프면서도 참으로 순수한 작품’이라 할 만합니다. 작가는 뉴욕 월가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필경사로 일하는 주인공의 ‘하고 싶지 않다’라는 ‘부정’의 대답으로 ‘근대적 삶’의 요구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부정’의 원인과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조금은 수수께끼 같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큰 여운을 남깁니다. “바틀비는 워싱턴에서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해고되었다. (중략) 사면 편지를 받았어야 할 사람은 절망에 빠져 죽었고, 희망적인 편지를 받았어야 할 사람은 희망을 품지 못하고 죽었으며, 희소식이 담긴 편지를 받았어야 할 사람은 구제받지 못한 불행에 짓눌려 죽었다. 생명의 임무를 받아 나섰건만 편지들은 죽음으로 질주한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더러운 영’은, 눈에 보이는 업적에 도취되고 풍요의 그늘에서 ‘배달되지 않는 편지’에 희망을 상실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우리의 태도에도 서려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주시는 살아 있는 영을 찾을 때 비로소 ‘더러운 영’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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