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느님 앞에 죄인인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비유를 들려주셨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리였다.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루가 18,10-14).
이 비유 말씀에 대한 해석에서 암브로시오 교부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기 잘못을 인식하여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주님을 쳐다볼 생각조차 못한 세리는 겸손히 죄를 고백함으로써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하면서 자신이 거룩하다는 것을 큰소리로 외쳐 대고 자신의 영광을 과장했으며 자신의 선행을 스스로 찬양하여 이웃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나아간 것이 아니라 자기 업적을 인정받으러 간 셈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용서를 청하는 우도(右盜)에게 다음과 같이 용서의 말씀을 들려주셨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 23,43).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하느님 앞에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흔히 입술만의 고백으로 머물고 만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앞에 정말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 참회의 기도를 할 때, 우리는 비록 우리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약점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을 모욕했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아버지로서 우리 가까이 계신다는 점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잘못으로 모욕을 당하시기보다는 오히려 그분께서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자녀들의 평안을 염려하시며 우리 생활에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는 우리 자신을 거슬러 파괴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슬프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죄는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파괴한다.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 - 2001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