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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 : 안드레졦     ¥ : 10-03-13 00:43     ȸ : 2140     Ʈ ּ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하느님 상은 우리가 신앙생활, 영성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인생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건강하고 올바르게 대할 수 있지만, 하느님에 대한 그릇된 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그릇되고 경직된 태도로 대하게 된다. 우리가 지닌 하느님 상은 우리 개개인의 인격과 관련된 모든 것에 모양과 색깔을 부여한다. 우리가 무슨 이유로 기도하는가? 에서부터 고통과 악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우리가 어떤 하느님 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건전치 못한 하느님 상은 건전치 못한 행실을 낳는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면서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하느님 상은 자비로우신 아버지라기보다 정의로우신 하느님일 경우가 많다. 죄를 지으면 벌을 내리시는 엄격한 정의의 하느님 말이다. 이 말에 “나는 아니야!”라고 부정하는 사람은 다음 물음에 대답해 보기 바란다.

언젠가 여러분의 자녀가 크게 아팠거나,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여러분은 혹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는가?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길래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혹은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하느님이 우리 집안에 이런 벌을 내린다는 말인가?” 등 말이다. 흔히 우리는 꿈자리가 사나우면 불안해하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못된 행위를 꾸짖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한다.

‘내 자식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또는 ‘내가 무슨 죄가 있길래.’라는 생각 그 밑바닥에는 하느님은 잘못을 저지른 인간에게 벌을 내리시는 엄한 심판관이라는 그릇된 이해가 깔려 있다.

하느님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갖고 있는 것만큼 우리 영혼을 뒤틀리게 만드는 것도 없다. 그 대표적인 예는 성서에 나오는 인물 입다이다. 입다는 하느님은 피를 보아야만 축복을 내려주시는 분이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터로 나가면서 기도하기를 하느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주신다면 돌아오는 길에 제일 먼저 마중 나온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그는 늘 그렇듯이 수많은 하인 중 하나가 제일 먼저 마중 나오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하나밖에 없는 딸이 첫 번째로 그를 마중 나온다. 입다의 비극은 그가 갖고 있던 그릇된 하느님 상 때문에 생긴 비극이다.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자비로우신 하느님이 아니라 무서운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구약성서를 그릇되게 이해한 까닭이요, 다른 하나는 심판과 벌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한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구약성서를 읽으면서 하느님을 공의(公義)로우신 분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노하시는 분으로 생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실 구약성서를 읽다 보면 분노하는 하느님을 자주 만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하느님은 인간이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화를 내시는 분처럼 다가선다. 예를 들면 신명기 28장이 그렇다. 신명기 28장에는 매 구절마다 하느님께서 불순종하는 인간을 어떤 식으로 치시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은 당신께 불순종한 인간을 악성 종기와 온갖 피부병으로 내려칠 것이요, 미치게 만들고 눈멀게 할 것이요, 원수들 손에 끌려가게 할 것이다. 또 아무리 수고하여 농사를 짓고 사업을 한다 해도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서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감히 하느님께 불순종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또 어쩌다 불순종을 하게 된다면 하느님께서 언제 천벌을 내리실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이 천벌을 받아서 죽었는가? 악성 피부염에 시달렸는가? 눈이 멀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신명기28장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머리로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고 생각하지만 마음 밑바닥에서는 분노하는 하느님으로 간주하고 있는 이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느님은 사랑의 아버지가 아니다. 인간은 제아무리 최선을 다해 산다고 해도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또한 하느님이 사랑의 아버지임을 알지 못하기에 자녀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용서 체험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 있다. 모름지기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르게 되면 엄격하게 율법적으로 키울 것이며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겠지만 실제로 사랑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 에서

성 바오로딸 수도회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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