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행복의 원리
인간은 매우 탐욕스러운 존재입니다.
아담은 하느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고 그래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결코 넘지 말아야할 선까지 넘고야 말았습니다. 인간은 탐욕으로 인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마저 따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든 것을 잃고 낙원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탐욕이 가져온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의 70% 정도만 먹으면 만족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돼지만은 자기가 먹을 수 있는 100%의 양만큼을 먹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리 좋은 먹이가 있어도 절대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의 120%를 먹습니다. 어떤 때는 200% 이상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고통을 받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먹어야 할 양식마저 빼앗기도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탐욕은 돼지만도 못할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셨을 때, 절대로 탐욕을 부리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만나를 거두어들이되 그 날 먹을 양식만을 허락하셨습니다. 단 안식일에는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안식일 전날만큼은 예외로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탐욕에 눈이 멀어 끝내 다음 날 먹을 것까지 거두어들입니다. 이 때 동작이 느리거나 늦게 나간 사람들은 만나를 거둘 수 없어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다음 날 먹을 것까지 거두어들인 가정의 빵바구니에 구더기와 벌레가 들끓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고 그것에 감사드릴 수 있도록 무려 40년 동안이나 피눈물 나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탐욕과 욕망에 눈이 멀어 참 행복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아주 멀리 있는 신기루처럼 보입니다. 인간은 탐욕의 신기루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자신도 불행에 빠뜨리고 남도 불행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비참한 인간들에게 주님께서는 참된 행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무조건 많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헛된 이상향을 버리고, 오히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이상향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꼭 무엇을 소유하고 차지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며 신기루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아무 것도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너무 많이 가졌을 때, 그것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아주 소중하고 귀한 것을 이웃과 나눌 때, 처음에는 아깝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소중하고 아까운 만큼 많은 아픔이 따릅니다. 이것이 참된 행복을 찾고 누리기 위해 겪어야 하는 첫 단계, 즉 인간적 슬픔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준 것 밖에 없으며, 자비를 베푸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얻는 것임을 언젠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나눔을 통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는 마지막 심판 때에 ‘가장 미소한 이에게 베푼 것이 바로 나에게 베푼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는 주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느님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준비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야 말로 가장 좋은 이상향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언제나 몸과 마음이 건강할 뿐만 아니라, 가난해도 부유해도 언제든지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