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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나눔] 울지마 톤즈 - 영화상영 CGV 16:00 18:10
  ۾ : 테아     ¥ : 10-10-16 12:00     ȸ : 3531     Ʈ ּ

울지마 톤즈한국 | 다큐멘터리 | 90분감독 구수환 출연 이태석, 이금희

줄거리아프리카 오지 수단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한국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가 남긴 마지막 선물…
위대한 사랑의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의 인생이 이제 온 세상을 울린다!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이태석 신부님 어머님의 인터뷰내용

 

10남매 중 9번째인 우리 신부님은 자랄 때부터 유독 사랑이 많았습니다. 우리 신부님이 초등학교 시절에 자기 누나와 고아원 앞을 지날 때는 그 곳에서 물끄러미 고아들을 바라보며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고아원을 차려 고아들을 볼 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우리 신부님의 누나가 운영하는 양장점에 들어 와 바늘과 실을 달라고 하더니 작은 손으로 거지의 옷을 꿰매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신부님 9살 되던 해에 남편이 사망하여 혼자 몸으로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삯 바느질을 하면서 10남매를 키웠습니다.

 

변변히 해 준 것도 없었는데 의과대학을 입학하였습니다. 의사가 되면 자기 앞길은 원만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뻤습니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제대 한 후 집에 와서는 신부님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반대를 하였습니다. 형도 신부님이고 누나도 수녀님인데 왜 너까지 신부가 되려고 하느냐? 하느님께서 저에게 또 한 사람의 신부를 원하시면 의사 아들의 동생을 신학교에 보내겠습니다. 하느님 이 아들을 신부로 쓸려는 생각은 제발 거두어 주십시오! 하느님께 기도로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의사 아들은 자기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며 광주에 있는 신학교를 갔습니다. 2001년에 신학교를 마치고 살레시오회 신부로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님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수단으로 가겠답니다. 거기서 몸이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음이 아픈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치료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산간 벽지에 가서 그 사람들을 위해 병을 고쳐주고 마음을 달래주는 신부님이 되라고 매 달렸습니다.

 

우리 신부님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곳 중에 톤즈라고 하는 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되어 그 곳으로 가서 그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살겠습니다. 우리 신부님은 그렇게 톤즈로 갔습니다. 저는 4월에 구수환 프로듀서님이 만든 스페셜 다큐를 보기 전 까지 그 곳이 그렇게 힘들고 열악한 곳인 줄 몰랐습니다. 그저 가끔 우리 신부님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미가 걱정할까 보아 그렇게 말 한 것이겠지요.

 

2008년 12월에 몸이 아파 한국에 돌아와 병원에서 대장암 말기의 병마와 싸우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어미인 저에게 항상 웃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투병 중인 우리 신부님을 찾아가면 항상 일어 나 앉아 밝은 모습으로 나를 맞았습니다. 선종하기 4일 전, 병원에 찾아 갔을 때도 문병 후 돌아가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휠 체어에 앉아 병원 문 까지 나와 잘 가라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4일 후에 하느님이 우리 신부님을 그렇게 데려 갔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데려 가지 않고 왜 우리 신부님을 데려가셨습니까? 하느님이 원망스러워 기도를 바칠 수가 없었습니다. 연도만 바치고 있었습니다. 제 가슴이 너무 아파 구멍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보름 후에 제가 다니고 있는 성당의 주임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보면서 하느님이 원망스러워 살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신부님은 우리 신부님이 이 세상에 있으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감당해야 하니까 그 십자가를 내려 놓기 위해 하느님이 요한 신부님(이태석 요한 신부님)을 데려 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그 후부터는 예전과 같이 하느님에게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 여기 있나이다 주님 : 야곱 : 창세기 46:2

 

나는 바다와 하늘의 주
백성 통곡 들었네
어둔 죄에 갇힌 이 구하리라
밤의 별 창조한 나
백성 어둠 밝히리
누가 내 빛 전할까
누구 보내나 

  후렴--여기 있어요
         저 인가요
         한 밤에 주님 말씀 들었네
         주님의 소명 응답하여
         주님 백성 위해 일하리


나는 눈과 비의 주
백성 고통을 지네
사랑하니 울었네, 날 떠난 이
돌과 같은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리
내 말을 전하고파
누구 보내나

--여기 있어요--

나는 바람과 불꽃의 주
소외된 이 돌보리
백성에게 잔치를 베풀리라
나의 빵을 주리라 그들 마음 기쁘게
나의 생명 주고파
누구 보내나
--여기 있어요..


미카엘롦   10-10-18 10:39
좋은정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아침마당에 나온 어머님이랑...형님신부님과누님  친구신부님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많은생각을 하게했습니다...온가족이  영화를  볼것입니다......이가을에 우리가슴속에  영원히잊을수없는 사랑을 심어주신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광야의롦   10-10-23 17:58
졸리 신부님 하늘 나라에서도 아픈 사람 돌보고 계시나요...
좀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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